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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책 읽기

윤미네 집 -전몽각

DidISay 2012. 9. 8. 03:03

 

 

 

 

 

 

 

어느 여름.

그윽한 참외향이 퍼져나가는 것 같던 밤.

 

 

아빠가 좋아하던 멸치국수를 함께 먹고,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수박바를 하나씩 나눠 먹으며

대자리에 배를 깔고 드라마를 보던 순간이었다.

 

 

 

아빠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혹시 나중에 남자친구 생기면 어떻게 할래?

"응? 몰라. 그건 왜 물어봐 아빠?"

"나중에 너 남자친구 생기면 아빠한테 제일 먼저 데려와야 된다. 아빠랑 술 한잔 마시게"

 

엄마는 옆의 대화를 듣다가,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애에게 주책이라며 웃으셨다. 

 

 

 

 

 

 

'윤미네 집'은 원래 다른 사진집을 고르다가, 워낙 평이 좋아서 궁금증에 함께 주문했던 사진집이다.

 

전문 사진가가 아닌. 그것도 예술계통이 아닌

토목공학자였던 아마추어 사진가의 가족 사진이라는 것은 이 사진을 받고 난 뒤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사진집의 특징은, 별로 특별할 것도 빼어난 외모도 아닌

그저 현관문을 열면 어디선가 길거리에서 마주칠 것 같은 그런 평범한 가족의

소소하고 아주 일상적인 순간들을 담아놨다는 것이다.

 

보통 이공계열이라고 하면 어딘지 딱딱하고 감성이 무딜 것 같다는 선입견이 떠오르는데,

작가의 말대로 자신의 가족에게만은 사라져버린 정이 생기는 것인지

너무나 다사로운 눈길로 셔터를 눌렀을 화면 너머의 작가가 저절로 연상되는 사진들이 많았다.

 

배냇옷을 입은 윤미가 걷고, 글을 읽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동생들과 나란히 서서 장난을 치기도 하고

대학을 졸업해 결혼을 할 때까지..

 

이 모든 순간들을 담고 있는 이 따뜻한 사진집은

마치 윤미와 함께 성장하고, 윤미의 자라남을 부모의 눈이 되어 바라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시집보내기 싫어지는. 아쉽고 섭섭한 그런 마음을.

 

 

 

윤미의 웨딩드레스 사진은 그래서.

그 어떤 아름다운 드레스 사진보다도 감동적이고 눈물겨웠다.

 

윤미의 손을 잡은 순간에도, 그녀의 모습을 직접 담길 원했던

그녀의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그런. 그런 사진들.

 

 

 

 

그리고 윤미의 사진 뒤에 따로 실려 있는

마이 와이프.

전몽각 씨의 부인을 담은 사진들도 작가의 애정의 마법 때문인지, 

아주 소박한 초로의 여인이 생기넘치고 아름답게까지 느껴지게 한다.

 

결혼하자마자 낯선 이국 땅에 건너간 딸이 안쓰러워 만든 윤미네집.

그리고 암투병을 하면서도 그토록 완성시켜 아내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마이 와이프.

이들의 가족사진에는 그저 흘러가는 세월만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까지 슬며시 담아둔 기쁨과 행복의 흔적이 내비친다. 

 

그래서 그녀가 이번에 개정판이 나오면서 덧붙인

이제는 작고한 남편에 대한 글 역시 부부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어 마음이 찡했다.

 

 

 

내가 만들게 될  '..네 집'도 저렇게 햇빛이 느껴지는

따뜻하고 정감 있는 모습이었으면.

 

 

 

 

책 머리에

 

 

 

  나무와 숲이 아름다운 유월이면, 우리 집 큰애 윤미가 시집간 지 2년이 된다. 지난 해(1989년), 스물여섯이 된 윤미는 자기가 좋아하던 짝을 따라 그토록 정다웠던 둥지를 떠나 새로운 둥지를 틀기 위해 우리 가족들 곁에서 날아갔다. 그것도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멀리 미국으로 유학을 간 것이다. 그때쯤부터인가. 나는 무심결에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못된 습성이 생겼다. 김포 쪽 하늘에는 웬 비행기가 그토록 쉴 새도 없이 뜨고 또 내리는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일이다. 윤미가 없는 '윤미네 집'...지금까지는 모두들 우리 집을 윤미네 집이라고 불렀었다. 그때서야 나는 아이들 사진 찍는 일도 마무리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26년 동안 찍어둔 필름 뭉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지고 메말라 간다고들 하지만, 혈육을 같이한 사이에서만은 아직도 인간 본래의 감성이 짙게 남아 있었다. 우리는 딸 하나 아들 둘을 키워 오면서 어느 누구네 집이나 다를 것 없이 '윤미네 집'을 이루었다. 그저 낳은 이후로 안고 업고, 뒹굴었고 비비대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간질이고 꼬집고 꺠물어 가며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를 나무우리(아기침대)에 넣어두고 시간 맞춰 우유병을 물려주는 미국이나 유럽의 그런 식과는 사뭇 달랐다. 그런 것을 너무나 한국적이라 해야 할지 혹은 원시적이라는 비평거리가 될는지는 모를 일이나 나와 아내는 하여간에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만 키운 것이다. 앞으로의 젋은 세대들은 요즘 같이 냉철하고 이성적으로만 치닫고 있으니 서양의 그네들처럼 그렇게 닮아 갈 것이란 미래 예상은 어렵지 않지만, 그 방식이 나로서는 안타깝고 두렵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자라던 그떄에는 나의 공부방에 있다 보면 아이들의 깔깔 대는 웃음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사람 사는 집 같았다. 시간이 가고 날이 가는 줄도 모르게 세월이 흘러갔다. 사진 찍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나는 아마추어로서의 서툰 솜씨와 사진이란 표현매체로서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그런대로 그들의 분위기라도 '기록'하여 훗날 한 권의 사진집을 만들어 '윤미네 집'의 작은 전기로 남기고 싶었다.

 

...

 

  누구나 자기의 가정, 가족은 소중하고도 특별나며 남다르게 느끼겠지만, 우리 부부가 이룩한 '윤미네 집', 윤미, 윤호, 윤석 세 아이들과 함께 하나하나 이루어 온 '윤미네 집'은 자랑할 아무 것도 없는 내게는 언제나 큰 기쁨이었다. 더구나 넉넉지 못한 살림에서도 아내는 헌신적으로 바르고 건강하게 아이들을 키웠고, 사진 재료만은 언제나 풍성하게 사주었다. '윤미네 집' 구성원은 모두가 아름답고 자랑스럽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더욱 더 샘솟는 애정을 보내며, 또한 이 사진집의 편집을 맡아준 주명덕 형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대신한다.

 

 

 

1990년 5월

관악산 기슭 녹명재에서

전몽각

 

 

 

 

 

읽다보니 한시간 정도의 분량이 나왔는데, 그 중 서문을 낭독한 파일.

아이패드 녹음이라 소리가 작기 때문에 볼륨을 꽤 높이고 들어야 한다.

 

 

 

 http://www.mediafire.com/?bycidkfxgaxbm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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