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날씨는 맑음
그때 그 분식집. 본문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본가에 다녀왔다.
보통 명절이나 주말에나 시간을 내서 찾는 편이라
평일에 이 고장을 찾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일 것이다.
아주 한적한 혹은 다소 들떠있는 느낌의 거리만 보다가
일상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니 기분이 이상했다..
어떤 골목을 보면 내가 매일 걷고 달리던 그 모습과 쏙 빼닮았는데,
또 어떤 건물은 사라지고 새로 생기기도 해서,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휴가를 내고 온터라 시간이 넉넉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중학교 근처로 걸어가봤는데
아직까지 내가 다녔던 학원건물이며 그 앞의 분식집이 그대로 있었다.
학원명은 이미 바뀐 상태라 조금 실망을 하고
분식집에서 식사를 할까 하고 설핏 봤더니
세상에..초등학교 때 그분이 아직도 장사를 하고 계시더라...
비평준화지역이라 중학교 때도 학원에서 11시가 다되어서 집에 갔었는데
저녁을 집에서 못먹으니 엄마가 항상 이 분식집에 5만원 10만원씩 돈을 맡기시고
식사 때마다 차감하곤 했었다.
덕분에 거의 3년 내내 매일 얼굴을 보던 분이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주는 사람에게 느끼는 특유의 정을
이곳을 갈 때마다 느끼곤 했다.
나와 친구들은 이곳의 단골 중의 단골이라,
고등학교 때도 종종 찾아가면 몇국자씩 듬뿍듬뿍 떡볶이를 얹어주시곤 했다.
가게 안에 포근히 퍼지는 오뎅국의 뽀얀 수증기.
온갖 재료들이 튀겨지는 소리가 좋아서 꽤 먼거리에서도 일부러 이곳으로 향했다.
첫사랑과 싸워서 화가 났을 때,
대학 합격을 알게 되었을 때
친구들과 달려간 곳도 여기였다.
하지만 대학교 때 서울로 온 뒤로는 한번도 뵌 적이 없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가 앉으니,
아주머니가 보자마자 놀라시면서,
아 우리 **가 이젠 아가씨가 되버렸네 하셔서
울컥 하고 눈물이 나버렸다.
결국 아주머니가 주신 다 못먹을게 뻔한 엄청난 양의 떡볶이를 앞에 두고
훌쩍훌쩍 울면서 지금까지 지낸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새 나를 이루고 있는 많은 것들이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등너머로 사라져버렸는데
이 작은 장소만은 그대로라는 것이 너무 고마웠던 것이다.
아주머니도 그 곱던 얼굴에 주름이 많이 느셨던데, 마음이 짠하다.
제가 결혼할 때도 꼭 알려드릴테니 오래오래 계셨으면...
'스쳐가는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동네-만남의 장 (0) | 2013.06.14 |
---|---|
이어달리기 (0) | 2013.01.17 |
우리였던 이야기 3. 분명한 것. (0) | 2013.01.09 |
밥상머리 이야기 11.어슴푸레한 담담함. 잔치국수 (0) | 2013.01.05 |
어설프고. 찢긴. 청춘의 맛 (0) | 2012.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