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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생각

밥상머리 이야기 4: 아빠가 통닭 사왔다.

DidISay 2012. 7. 4. 02:19

 

 

어릴적 우리집의 저녁풍경은 언제나 비슷했다.

 

따땃하게 뎁혀진 방바닥에 배를 깔고 만화를 실컷 보거나
미미나 쥬쥬인형을 가지고 인형 놀이를 하는 느긋한 일상.

그러다가 현관문 밖으로 터벅터벅.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쏜살 같이 아이템플이나 구몬 등을 펼쳐놓고 숙제를 하는 척 연출하곤 했다.

엄마의 '어우 지지배 여우짓 하는거 봐' 하는 핀잔과 함께 초인종이 울리면,
곧 아빠가 들어오셨는데 내가 가만히 앉아서 숙제를 하고 있는 걸 보면
함지박 웃음을 지으시면서 '우리딸 이리 와 봐'를 외치셨다.

그 말 뒤에 이어지는 대사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빠가 통닭 사왔다'였다.
이 '통닭'이라는 단어는 우리 식구가 모두 뿌듯해지던 마법의 단어였는데,
왜냐하면 이 날은 어김없이 아빠의 '월급 타온 날'이었기 때문이다.

월급날의 아빠는 언제나 일찍 들어오셨고,
엄마는 그에 맞춰 오랜만에 아빠와 함께 먹을 맛있는 식탁을 차리곤 하셨다.
이런 날엔 어김없이 생선이 올라와서 날 괴롭게 했지만 난 괜찮았다.
왜냐하면 아빠가 사오는 '통닭'이 있었으니까.


'자 이 달의 월급!' 이라면서 다소 과장되고 얼콰해진 동작으로 아빠가 누런 봉투를 건내면
엄마는 '와 잘 쓸게요'라는 또 평소보다 좀더 나긋하고 달뜬 목소리로 이를 받으셨다.

 

아빠는 항상 봉투에서 얼마의 돈을 꺼내 나에게 후한 용돈을 주셨고,
다른 손에 들려있는 통닭봉투 때문에 언제나 그날의 용돈은 시장의 기름냄새가 나서
다음날에도 어쩐지 날 흐뭇하게 했다.

평소에도 종종 닭을 시켜먹긴 했지만,
이때의 닭은 이미 동네를 점령하고 있었던 '페리카나 치킨'이었다.

치킨보다는 덜 바삭하고 세련되지 못한 아주 토속적인 맛이었지만
아빠랑 엄마랑 동생과 둘러앉아서 먹는 통닭의 느낌은 치킨이 줄 수 없는 넉넉한 행복이었다.

통닭을 먹을 때면 간간히 나오는 이야긴 할아버지가 퇴근 길에 사다주셨던 시장통닭의 맛이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행복의 음식은,
바로 나의 할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퇴근길에 건내주었던 '통닭'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따뜻한 정감은 어린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장에 부글부글 끓는 커다란 기름통과

잔뜩 쌓여있던 통닭의 풍경은 점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더니 언제나 고소한 인절미 가루로 기억되던 재래시장 마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우리 가족을 모두 행복하게 하던 그 연극적인 월급전달식도 행방을 감추었다.

어느날 월급이 자동이체로 바뀌면서 엄마는 편하다고 좋아하셨지만,
아빠는 매번 투덜거리면서 어딘지 허탈하다고 속상해하셨다.
통닭은 간편하게 시켜먹을 수 있는 치킨과 맥주로 바뀌었고
치킨을 더 선호했던 나였지만, 묘한 상실감을 갖게 되었다.

요즘의 아이들은 옛날통닭의 그 풍경을 잘 알지 못한다.
월급날에 울려퍼지던 '아빠가 통닭 사왔다'의 정경이나
그날만은 주인공이던 아빠의 뿌듯함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월급봉투가 사라진 후에도 아빠는 가끔 어디서 찾으셨는지 '통닭' 을 구해오곤 하셨는데,
그때의 난 어렸지만 어쩐지 아빠의 기를 살려주고 싶어 더 과장된 탄성을 지르며
눈을 반짝이고 '우리 아빠 최고'를 외치곤 했다.

늘어가는 아빠의 주름에 마법의 기를 불어넣듯이.
어린 시절의 그 행복을 아빠에게 전달해 주고 싶어서.



재래시장 한 켠의 기름통이 자글거리던 풍경과 누런 월급 봉투는
슬그머니  사라지져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옛날통닭이라는 이름으로 세련된 매장에서 파는 음식은
화사한 접시에 레몬이나 감자튀김 등을 얹은 새침한 모양으로 등장해
어김없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건 가짜음식이야.라고 중얼거려 본다.

나는 먼 훗날 아이에게 어떻게 세대를 거듭하여 내려오던
이 행복을 전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