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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생각

밥상머리 이야기 7. 진득한 손맛

DidISay 2012. 7. 6. 00:20

 

 

 

글을 시작하기 전.
비올 때 즐겨듣는 노래.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좋아하시길 바라요 :)

 

 

 

 

 

 

음식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관용구가 있다면, 바로 그것은 '음식은 손맛'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만약 손맛으로 음식을 줄 세울 수 있다면
그 첫 번째 자리에는 '수제비'가 있을거라고 언제나 생각하곤 한다.

왜냐하면 수제비는 그 어떤 음식보다 손을 많이 사용할수록 맛이 있어지는,
시간과 끈기를 요구하는 반죽 만들기 과정이 필요한 음식이니까.


알고보니 내 첫사랑이었던 선배가 드라이브 겸 데려갔던 삼청동 한구석의 수제비도 소중한 기억이고,
아빠와의 낚시 여행에서 끓였던 수제비라면도 좋은 추억이지만
역시 가장 자주 먹었던 수제비는 비오는 날 엄마가 해주시던 그것이다.

 

그렇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손맛의 대명사. 수제비이다.



나의 외할머니는 수제비는 입에도 대지 않는 분이셨는데,
그 이유는 가난하던 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아주 어릴적에 할머니가 밀가루 음식을 전혀 드시지 않는 것을 보고,
천진한 목소리로 '할머니 왜 안드세요?수제비 되게 맛있어!' 라고 물어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예전에 너무 많이 먹어서'였다.

요즘이라면 다이어트 때문에 밀가루를 먹지 않는다거나,
오히려 탄수화물 중독이 염려되어 밀가루를 일부러 섭취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밀가루는 그런 사치스러운 이유가 아닌,
수제비는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이자 잊고 싶은 과거의 흔적이었다.

어떤 음식을 몇십년이 지난 뒤에까지 입에도 대지 않을 정도로 매일 매끼를 질리게 먹어야한다면,
도대체 그 가난은 얼마나 처절한 것일까.
그리고 그런 막막한 가난을 나의 조부모님과 부모님 세대들이 또 그렇게 묵묵히 헤쳐오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처절한 가난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의 마음은 숙연해진다.

 


이처럼 수제비와 관련된 나의 추억은 아주 특별하다거나 멋있는 것은 아니다.



수제비는 그저 집에서 평범하게 먹는 가정식일 뿐이었는데, 그 재료는 참 유연하기도 해서
집 냉장고가 두둑할 때는, 새우와 오징어 그리고 바지락이 담뿍 들어가곤 했고,
그렇지 못한  어느 날에는 애호박과 멸치국물로만 간단하게 맛을 낸 수제비가 상에 올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수제비는 각종 해물이 들어간 고급스러운 맛이 아니라,
건새우와 멸치다시에 애호박과 햇감자를 넣은 아주 소박한 수제비였다.

난 식당에서 파는 야들야들한 기계에서 빼낸 피가 아닌,
집에서 엄마가 '우리밀가루'로 만들어준 약간은 투박하고 도톰한 수제비를 참 좋아했다.

그래서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린 날이면, 오늘은 집에 가서 엄마에게 수제비를 만들어 달라고 졸라야지! 하고
따뜻하고 커다란 냄비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 나는 빨간 체크무늬 교복에 단화를 맞춰신곤 했는데
까만색에 코가 둥근 단정한 구두는 해가 좋은 날이면 앞코가 반짝반짝 빛나 참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장마철이 되면 언제나 진흙탕물이 배나 튀어 나를 곤란하게 했었다.

그래서 항상 비가 내린 뒤에 집에 오면,
엄마는 내 어깨에 묻은 물기와 종아리에 튄 흙탕물을 닦아주며 
'아이고 어느 집 딸이 이렇게 새앙쥐 꼴로 왔나 했네' 하면서 웃곤 했다.

그리고 내가 배시시 웃으며 '엄마 나 수제비 먹고 싶다아' 하면 
엄마는 흔쾌히 그 커다란 솥에 물을 끓이고
'얘 이번에 나온 햇감자가 맛있더라'고 외치셨다.

난 수제비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서 감자를 가장 좋아했는데,
계란을 풀어낸 맑은 육수와 함께 먹는 뜨끈하고 두툼한 감자는 
비로 차가워진 속을 따땃하게 달궈줬다.

바닥에 널어놓은 교복에서 부연 김이 솟아나고,
배를 깔고 엄마가 던져준 과학동아를 뒤적이면 도착하던 작은 상.  
진한 전라도식 김치와 수제비.

모양은 비록 단촐했지만, 엄마의 말처럼 그 날의 포실포실한 햇감자는 참 맛있었고,
예쁘진 않지만 부들부들하게 풀어낸 계란 역시 참 보드랍게 술술 넘어갔다.





할머니에겐 가난의 흔적이었던 수제비가 ,세대를 건너와 나에겐
비내리는 날에 생각나는 정감 어린 음식으로 변화했다.

할머니도 엄마의 어린 시절 어느날엔
가난한 살림에 5남매를 먹이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으로
밀가루를 찰지게 반죽하고 하나하나 피를 뜯어 뜨거운 국물 속에 띄우셨을 것이다.
가난함과 결핍의 아픔을 어머니의 손맛과 사랑으로 채우길 바라며.

아마 할머니가 수제비를 싫어하시는 이유는, 본인이 수제비를 많이 드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 힘든 살림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다섯 아이들의 입성을 책임져야 했고,
하지만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결핍되고 배고픈 상태이던  아이들을 봐야했던
가슴아픔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그 힘든 시절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수제비를 매우 좋아하셨는데,
아마 그건 내가 느꼈던 비 내리던 날의 그리운 추억을 어머니도 갖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

내가 어린 시절에 싱크대 앞에 서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애잔한, 하지만 따뜻한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나의 어머니도 자신의 어머니를 같은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