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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생각

유모차 두 대와 휠체어

DidISay 2012. 10. 15. 02:43

 

 

                                                                    이두표, 산 것과 주운 것-유모차 두대, 2011

 

 

 

 

 

내가 매일 오가는 동네 한 귀퉁이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그 공원은 동네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구석구석 골목골목을 탐험해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울만한.

아주 작고 옹색한. 하지만 어딘지 정감이 느껴지는 놀이터와 쉼터 사이 그 중간쯤에 위치한 장소이다. 

 

가끔 일상에서 눈길을 끄는 소소한 일들이 이 공원을 지나갈 때 목격되기 때문에

난 이곳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며칠 전의 일도 이 곳에서 일어났다.

 

 

 

 

낮에 이 공원을 지날 때 항상 눈여겨봤던 것은, 고부사이인지 모녀사이인지 알 수 없는 두 여인의 모습이었다.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골목을 아주 천천히 걷거나,

공원에 라디오를 틀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는 모습으로 두 분은 종종 나에게 목격되었다.

 

그저 나이가 아주 많은 할머니와 4,50대 정도의 아주머니가 매번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아주머니의 옷맵시였고 두번째는 두 사람의 표정과 행동이었다.

 

아주머니의 옷은 젊은 사람들을 코스프레한 어색한 차림도 아니고

그렇다고 뽀글머리에 주렁주렁 치장을 하거나 꽃무늬 일색의 옷차림도 아니었다.

 

보통 연한 보라색이나 푸른색의 옷을 걸친 모습이었는데

언제나 빳빳하게 풀을 매긴 모시거나, 세련된 문양의 실크 옷감들이라

단정하고 기품있어 보이는 분위기를 자아내어 내 눈길을 잡아끌곤 했다.

 

그리고 휠체어에 앉아계신 할머니 역시 단정하고 깔끔한 옷매무새라

두 분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깔끔하게 잘 다려낸 한복깃을 떠올리게 하였다.

 

 

 

내 경우 '노인 봉양'이라는 단어는 '극단적인 효자효녀일화' 혹은 '알츠하이머' 등의 질병을 연상시키게 했는데,

그 단어들은 '고단함'이나 '감정과 육체의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느끼게 하지

'즐거움'이나 '다정하고 단란한 시간', '품위있음'과는 꽤 거리가 먼 이미지였다.

 

한편으로는 '나중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도 괜찮다'정도의 느긋한 마음을 먹고 있음에도
저 이미지들은 드라마나 전래동화를 통해서 주입된 일종의 고정관념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두분의 모습은 분명 아주 즐거워보였고, '노동'이나 '의무', '어쩔 수 없는 시간 보내기' 라기 보다는

그저 시간의 흐름을 함께 견뎌내는 좋은 동반자이자 다정한 친구에 가까워보였던 것이다.

나중에 나도 엄마나 시부모님과 저렇게 지냈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모습.

 

그래서 아주머니는 휠체어를 세워둔 채 공원 한켠 벤치에서 책을 읽고

아주 작은 몸집의 할머니는 휠체어에 푹 꺼질듯이 누워서 꾸벅꾸벅 졸며 햇빛을 쬐는 그 광경은

공원에 갈 때마다 나에게 작은 기쁨과 감동을 선사하곤 했다.

 

 

 

 

 

며칠 전 골목길을 걷다 잠시 발걸음을 멈춰야 했는데,
유모차 두 대가 마주 서서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어서
지나갈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아이의 엄마가 미안해하며 길을 비켜줬을 때 맞은편에 서 있었던 건
또 다른 유모차가 아니라 휠체어를 끄는 그 아주머니였다.

 

아직 애띤 모습의 젊은 엄마와 초로의 아주머니.

유모차에 탄 복숭아 뺨을 지닌 아기와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휠체어의 할머니.

이 네 사람의 묘한 어울림이 묘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하루종일 이 모습이 이상하게 자꾸 눈에 걸려서 신경이 쓰이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나이가 들면 모두 아기가 된다고 하던데,

정말 휠체어에서 곤한 잠을 자고 계시던 작은 몸집의 할머니의 모습은

옹알이를 하는 아이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아이엄마의 눈길은,

할머니의 휠체어를 단단하게 잡고 있는 아주머니의 손길과 비슷했던 것이다.

 

어릴 적 24시간 엄마에게 생사를 의지하여 보살핌을 받던 아이가,
나이가 들면 아기의 모습으로 돌아간 부모를 똑같은 마음으로 보살피게 하는 것이
만약 신이 있다면 그가 인간에게 마지막 선행의 기회로 남겨둔
삶의 순리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유모차 한 대를 더 보았다.

 

이 유모차는 아이가 탄 유모차와는 달리 '불안함'과 '아픔'을 선사했는데,

바로 폐지를 줍는 할머니들의 낡고 너덜너덜해진 잿빛 유모차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삼 휠체어에 탄 공원의 그 할머니를 떠올리며,

아주 소박해보이는 저런 노년의 삶도

지금 내가 이 세상에서는 얼마나 복받은 것인가.하고 다시금 되새기게 하였다.

 

 

 

길을 걷다 폐지 줍는 노인들을 보면,

혹은 옹색한 물건 몇가지를 허름한 유모차에 담아 위태위태하게 걸어가는 노인의 그 뒤모습을 보면

난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쓰리곤 했다.

 

누군가의 유모차는 생명력과 탄생의 환희, 보호와 기쁨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그것은 사회안전망 없이 추락해버린 밑바닥의 삶, 생계유지의 수단이라는 것이

너무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동시에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유모차는 행복과 슬픔, 기쁨과 좌절, 여유와 가난과 같은

우리 삶의 양면성을 떠올리게 하는 역설적인 사물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모차가

좌절이 아닌 기쁨의 물건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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