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스쳐가는 생각 (68)
언제나 날씨는 맑음
인터넷 게시판의 글들을 보면 가끔 타 게시판의 글을 원작성자의 허락도 없이 그냥 가져와서 사용하는 걸 너무 많이 본다. 단순히 인용이나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건 그나마 이해를 하겠는데, 원작성자를 비난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샷까지 해가면서 공개적인 타게시판에 올리는건 도대체 무슨 생각인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이건 무슨 마녀사냥도 아니고. -_-;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불합리함에 대한 울분이 인터넷만 하면 터져나오는건지. 문제는 이걸 왜 개인적인 차원에서 단죄하려고 하냔말이다. 그 넘치는 에너지로 정말 화내야 할 일에 제대로 화를 내던가. 예수가 그랬던가. 너희 중 죄 없는 자만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도덕이나 양심의 잣대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불법적인 일이 아닌 이상 그것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평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물건을 팔거나 연설을 하기에 적절한 인구 밀도, 승객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약자석은 넉넉하고 한두 사람이 서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앉은 사람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류의 기기를 들고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종이매체, 신문도 아니고 사전만한 두꺼운 책을 든 ‘옛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조용해서 책읽기엔 좋았다. 커피숍, 버스 정류장, 식당, 심지어 눈앞에 스크린이 펼쳐지고 있는 극장에서도 비슷한 풍경과 자주 만난다. 이제 휴대 가능한 작은 컴퓨터는 도구를 넘어 몸의 연장(延長)으로서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문구로 유명한 1964년 마셜 맥루한의 걸작, 의 부제는 “몸의 확장(extensions)”이었다. 나는..
예전엔 내나무라고 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의 몫으로 나무를 심는 풍습이 있었다. 여자아이는 시집갈 때 가구를,남자아이는 관을 짜는 용도로 나무를 사용했는데,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아이와 나이가 똑같은 그 나무가 언제나 함께했다. 내가 나이를 먹는만큼 나무도 하나의 나이테가 새로 생기는... 나도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어주진 못하더라도, 꼭 아이의 이름으로 정기후원을 새로 시작하려고 한다. 아이가 가진 삶의 몫만큼 또 다른 생명도 조금이나마 더 행복해졌으면 한다. 사실 나눔이나 기부라는 거창한 말을 한꺼풀 걷어내고 나면, 소소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생각난김에 적어보았다. 1. 모발기증 백혈병,소아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가발을 지원해주는 캠페인이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통해..
▷ 힘으로 남을 이기려 하지 말라. 맹자가 말하였다. "힘으로 남을 이기려 하면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지만 진심으로 복종한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해서요, 덕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려하면 마음속으로 기뻐서 진심으로 복종하게 된다." 삼국지에서 예시를 많이 본 것 같다. ▷ 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 "한때의 분노를 참으면 백 일 동안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 단지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이성적인 끈은 놓지 말아야.. ▷ 남을 해치고자 하면 자신이 먼저 당한다. 태공이 말하였다. "남을 판단하고자 하면 먼저 자기부터 헤아려 봐 라. 남을 해치는 말은 도리어 자신을 해치게 되니, 피를 머금었다가 남에게 뿜으면 먼저 자신의 입부터 더러워진다." 더러워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 지나친 생각은 정신 건강..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를 수 없던.. 그래서 맹맹하고 왠지 맥빠지게 느껴지는 '자장면'이라는 단어로 불러야 했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은 짜장면이라는 단어를 정말 사랑한 것 같아요. 짜장면...이라고 발음할 때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춘장의 짭짤하고 강한 향과 맛. 동글한 면을 이와 혀 사이로 끊어내릴 때의 감촉, 돼지기름의 매끈한 풍미...등이 이 단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죠. ^^ 초등학교 때, 수필 '짜장면'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짜장면이라는 지극히 소박하고 일상적인 음식을 가지고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맛깔스럽게 풀어낸 것이 재밌었어요. 저에게 짜장면은, 엄마가 목욕탕 가기 싫다고 할 때 회유책으로 제시했던 비장의 카드. 일요일 늦은 아침이면 집에서 따뜻한 방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혹시 '자기만의 방'을 처음 가졌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실 수 있나요? 제가 처음 나만의 방을 가진 시점은 정확히는 처음 혼자 자게 된 날일텐데, 유치원을 다니기 전이니 아마 4살정도였을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여분의 방이 있었지만 거의 부모님과 함께 자다시피해서 내 방이란 개념이 별로 없었거든요.내방이라기 보다는 놀이방이었죠. 그러다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되었는데, 내 침대, 내 책상, 내 책장...모두 내 물건과 가구들로 빈방이 인형놀이를 하듯 채워지는 그 과정이 너무 좋고 신기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집이 부모님이 처음 구입하신 '나만의 집'이었는데, 두분 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마련하셨을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된 것이었을지, 이제와서야 마음이 벅차고 찡합니다. 그리고 감사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이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훤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김용택 Full Moon.. 말 그대로 환하게 꽉 찬 달이 뜬 주말. 달이 너무 밝아서 누군가에게 달달한 목소리로 반갑게 전화라도 하고 싶은 그런 날이었는데, 이 시가 생각나서 꼭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웃었다.
오늘의 시. 비망록 문정희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15살 소녀가.. "저 힘든 일 있어요" "응 뭔데?" "새로 알게된 오빠가 저랑 연락 안 한대요.." "아...정말? 언제 알게 된 오빤데?" "어제요...흑흑" "아...언제 연락 안한다고 했는데..?" "어제요...흑흑" 순식간에 빠져드는 15살의 사랑도 '사랑' "그래서 문제야.." "음...그래서 헤어질거예요?" "아..모르겠어..." "정말 어렵네요..." "(치킨 먹으며)아, 남자친구도 치킨 좋아하는데..." 두 시간 흉보고도 치킨 좋아하는 남자친구 챙기는 언니의 사랑도 '사랑' 귀엽기도 하고 때론 날카롭게 현실적이어서 아프기도 한 사랑. 그래도 난 역시, 오늘밤도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가을/함민복)"
나른한 오후. 무한반복재생 중인 신치림의 앨범 정말 좋다. 그리고,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생각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오히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 해답은 언제나 스스로 우리를 찾아온다. 복잡한 생각에서 한 걸음 벗어나 고요함 속에 진정으로 존재하는 바로 그 순간에 온다. 비록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순간 해답을 얻게 된다. 지나치게 깊은 생각에서 벗어나라. 그러면 모든 것이 변하리라. 자신을 남과 비교하거나 더 많은 것을 이루려 애쓰지 마라. 모든 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라. 그들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다. 당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그들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불충분한 자신의 존재가 완벽해지기를 꿈꾸지 마라. 강박관..
홍찻잔 모으기 >_< 한 개씩 모은 게 이제 꽤 많아졌다. 떼샷 한 번. 뿌듯뿌듯. (열두 달의 홍차) 책은 홍차 마시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용하다. 이젠 모으지 않는 카렐티. 마리아쥬 마르코폴로. 프랑스 갔을 때, 만원 대로 샀던 마르코폴로... 우리 나라에선 가격이 네 배는 되는듯... 한 번 마셔보면 안 살 수가 없다. 반가운 전화 한 통.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결혼을 앞두고 그녀가 내게 준 일들... 1. 축가(결혼식 엉망돼도 난 몰라. 이건 쫌 시간이 필요하다...) 2. 아침에 가서 웨딩드레스 입고 화장하는 것 도와주기. 3. 사진 찍어주기. 4. 부케받기.(괜히 잘못 받았다 노처녀 될 거 같은데...) 5. 폐백 관찰 6. 신혼 여행 바이바이 해주기 7. 결혼식 반주 장난처럼 입버릇처럼..
다이어트와 섹스 미국의 여배우 기네스 팰트로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라는 영화 촬영을 위해 뚱뚱하게 분장하고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사회가 뚱뚱한 여성을 얼마나 적대시하고 함부로 대하는지 느꼈다며 놀라워했다. 체중이 늘어난 성 판매 여성에게 벌금을 물리는 성매매 업주가 뉴스에 보도된 적도 있다. 갓 결혼한 남성들은 종종 연애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아내의 식사량에 ‘충격’을 받는다. 여자가 그렇게 밥을 많이 먹는 줄 몰/랐다고 말하는 남편들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무게는 절제와 인내력 등 자기관리의 지표일 뿐 아니라, 여성의 인격과 정체성의 기준이 된 지 오래다. 물론 뚱뚱한 남성도 환영받지는 못하지만, 몸무게가 일상적으로 남성의 삶을 통제하거나 규율하지는 않는다. 여성의 체중은 곧바로 취업·결..
우크라이나의 백조. 안나 베소노바에 대한 글을 보고 갑자기 내가 좋아했던 영상 몇가지가 떠올랐다. 어릴적에 올림픽 다른 장르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리듬체조만은 너무 예뻐서 열심히 감상했었다. 너무나 인상적인 마무리를 보여주었던 경기. 안나 베소노바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감각적으로 소화해내는 데다가, 특유의 감성적인 무대와 미모로 맨 처음 봤을 때 정말 홀린듯이 감상했었다. 허리유연성이나 기교가 다소 부족한게 이 선수의 약점이라 참 안타깝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감성력이 흘러넘치는 무대는 정말 최고이다. 저렇게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조절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상은 바로 이것. 정말 즐기면서 하고 있다는 느낌이라 몇번을 봐도, 웃음이 나는게 유쾌한 기분..
며칠전부터 운동하면서 '청담동 살아요'를 보고 있다. 종편방송들은 거들떠도 안보다가, 추천글을 읽고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좋은 시트콤이다. 종편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잘 알려졌을 작품인데 아쉽다. 오늘 9화를 보다가 어쩐지 인상 깊은 대목이 나와서 글로 남겨 본다. '다정도 병'인 지경에 이른 극 중 인물이, 왜 자신이 항상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에게 끌렸는지를 깨닫는 부분이다. ... - 그 놈이 불쌍한 이유 - 그가 불쌍한 이유는 내가 불쌍한 거다. 불쌍한 그 놈에게서 불쌍한 나를 본 것이다. 불쌍한 나를 그냥 지나쳐가지 못해 그렇게 붙들고 안쓰러워하는 거다. 나를 건사하는 거다. 그 놈은 나다. ' 그래, 맞다. 기름진 안경알에서 정리해고 당한 우리 아버지를 봤..
직장인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아마 금요일이 아닐까요? 그 중에서도 금요일 저녁, 오후 6시 퇴근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적어도 60시간은 업무와 상관없이 신나게 보낼 수 있으니까요.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볼까? 데이트를 할까? 아마 사람마다 다양한 계획을 세우겠죠. (저도 그랬죠) 하지만 저 같은 직장맘들에게 주말은 그렇게 즐겁기만 한 시간은 아닐 겁니다. 당장 저 같은 경우는 금요일 저녁은 테이크아웃 음식으로 해결하지만, 나머지 6끼는 집에서 해먹어야 합니다. 피곤하다고 밖에 나가서 먹기 시작하면 비용이 장난 아니니까요. 그러려면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유통기한이 임박해서 우선 해결해야 할 재료는 뭔지, 빠른 속도로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주말에 하는 일이라곤 밀린 집안청소와 육아. 단 두 단어로 ..
내게는 종종 ‘꿈’에 관련된 상담사연이 들어온다. 요지는 지금의 이 구질구질하고 지긋지긋한 월급쟁이를 관두고 오래도록 꿈꿔오던 일을 쫓아도 되겠느냐는. 구체적으로 꿈의 내용을 물어보면 놀랍게도 대개가 드라마 작가, 단행본 작가, 시나리오 작가 등의 ‘작가’직들이다. 현재처럼 인간 스트레스에 안 시달릴 것 같고, 뭔가 자아실현을 할 것만 같고, 창의적이면서 화려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대접받을 것만 같은 이미지인가 보다. 그런데 왠걸, 현실에선 믿겨지지 않는 여성 시나리오작가의 비극이 발생했다. 이 충격적인 사건 이후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꿈을 재구성할지 궁금하다. 한 편, ‘꿈의 직업’은 대개가 ‘처음엔 서러운 무명으로 시작해 미친 듯이 노력해서 역경을 뚫고 성공했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동반하고 있다...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글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쓰기 까다로운 놈이 하나 있다. 바로 자기소개서이다.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취직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쓴 적이 많은데 그때마다 진땀을 뺐다. 문제는 그렇게 힘들여 썼는데도 초등학생의 작문만도 못한 글이 되기 일쑤였다는 점이다. “나는 19××년 부산에서 단란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운운하는 전형적인 서류전형 탈락자의 자기소개서에서부터 자기소개서의 아방가르드라 할 만큼 파격적인 형식 실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버전의 자기소개서를 써봤지만 내용은 대동소이 허접스러웠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동네 백일장을 휩쓸며 어디 가서 글 못 쓴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던 나로서는 참기 힘든 굴욕이었다. 왜 그럴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다가 떠..
많은 위로가 되었던 글. - 아프냐? 그때가 바로 공부할 때다! (중략) 한 젊은이가 가난한 이모부 집에 얹혀사는데 앉은뱅이가 되었다. 보통 이런 상태라면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져 버릴 것이다. 그런데 이 청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헛된 희망을 부여잡고 악착같이 뭘 한 것도 아니다. 그저 긴긴 해를 보내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를 익혔을 뿐이다. 그런데도 일심정력으로 익히고 또 익힌다. 이거야말로 공부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가. (중략) 『임꺽정』에 대한 책을 쓸 즈음, 난 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과로와 운동부족으로 오른쪽 다리가 퉁퉁 부어오른 것이다. 약을 먹으면 좀 좋아졌다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곤 했다. 그래서 몸이 좋아지면 꼭 다시 산에 오르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때 문득 유복이가 ..
1848년 7월 혁명 당시, 파리 시민들에 의해 제일 처음 공격을 받은 것들 중 하나는 시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시계탑이었다고 한다. 시민들은 그 누구의 지시 없이 무작정 시계판에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혁명은 다른 모든 시간들을 정지시켜버린 채 그대로 계속 진행될 수 있었다. 사실, 당시 파리 시민들의 그러한 행동이 근대적 시간관에 대한 단호한 거부와 단절의 몸짓이라고 규정하기엔 조금 억지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그저 몇몇 사람들에 의한 우발적인 행동일 수 있고, 치기였을 수도 있다. 아무리 시계판에 총질을 해댄다 하더라도, 시간은 계속 그 뒤에서 째깍째깍 흘러갔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사건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시계에 대해서, 시간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일요일에 날도 너무 덥고 피곤해서 나가고 싶진않고, 뭐를 할까 하다가 '호텔 르완다'를 봤다. 영화를 보기 전에 어떤 내용인지 좀 찾아봤는데 르완다 사태 도중에 있었던 실화를 다룬 영화라는 걸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르완다와 관련된 기사를 여러차례 본적이 있어서 두 종족 간의 갈등으로 인한 분쟁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자세한 것들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걸 보자고 결정. 영화 중간에 길거리 학살 장면을 촬영해 온 외신 기자에게 주인공인 폴이 그 장면을 보면 이제 세상 사람들이 알고 개입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답변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는...'오 저런, 저렇게 잔인할 수가' ... 그렇게 말하곤 저녁식사를 할지도 모릅니다"이었다. 그걸 보고 얼마 전에 봤던 모 사설이 생각났다...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내가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운 자라고 할 수 있다 -애련설 中 2009년도 구정즈음이었나. 다도를 한창 배우고 있었다. 기다림의 미학을 익히고 싶다거나. 나처럼 예쁜 간식류나 다기들에 흥미가 있으면 배워볼만 하다. 소담스러운 소품들이 하나하나 참 예뻤는데, 저 때는 '화중군자'인 연꽃을 띄워놓았었다. 그런데 예전에 꽃꽂이도 그랬고 다도도 ..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창밖을 보다가 우연히 한 할머니께서 신호등을 건너시는 것을 보았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신호등은 노인분들이 건너시기에는 너무 빨리 바뀌는데다가 요즘에는 몇초 지나지도 않아 알림등이 급속히 내려가 더 조급함을 유발시킨다. 어찌나 위태로워 보이시던지 숨가쁜 걸음으로 겨우겨우 길을 건너실즈음에야 내가 다 한숨을 내쉴 지경이었다. 그 다음에는 도로공사장이었는데 공사중이라 턱이 조금 높았다. 젊은 사람이라면 쉽게 올라가버릴 별 신경도 쓰이지 않을 길이었는데 정말 힘겹게..이리저리 낮은 곳을 찾다 힘겹게 올라가셨다. 아장아장 왠지 아기같은 .. 그러나 왜 그 모습이 그리도 처량해보이는지 괜히 우리 할머니도 저렇게 힘이 없어지셨을까봐 마음 한켠이 짠했다. 나도 나의 부모님도..그리고 내 주변의 ..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아주아주 커다란 운동장을 가진 학교로 전학을 간적이 있었다. 그 커다랐던 운동장에는 길쭉길쭉한 나무들이 또 그렇게 끝도 없이 서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그 작은 키에 높다랗게 보이던 그 나무들이 얼마나 커보였는지 여름에는 그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이 좋아서 가을에는 나무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질때 그것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어느 친구의 말에 하염없이 하염없이 우리모두 그 아래에 서있었더랬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가을이 되어 커다란 잎들이 하나하나 쌓여갈 때 짙게 학교 전체를 감싸던 그 나무향들이다. 정말 말그대로 暗香(암향)이라 할만하다... 아침에는 흔히들 그렇듯이 청소를 했었는데 워낙 나무가 많았던 학교의 특성 상 그 나뭇잎들을 줍고 한데모아 후에 땅의 밑..
어렷을 적 나의 기억은 이제는 흐릿한 하나의 단상으로 남아있다. 특히 5살이전의 기억들은..더더욱 그렇다. 조금씩 생각나는 것들은... 좋아하지도 않는 가지를 할머니가 가꾸신 화단에서 그저 재미로 똑똑 따다가 혼났던 기억... (지금은 잘먹는다 ^^) 외가에 놀러갈 때마다 할머니가 쥐어주시던 펜과 종이로 열심히 공주며 동물이며 별들을 그렸던 손가락들.. 한동안 힘겹게 배우던 젓가락질 연습... 혀짧은 소리로 지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귀가 발개져서 총각이었던 삼촌들과 싸우며 놀리며 그렇게 지냈던 날들.. 분에 못이겨 울던 날 번쩍 들고 나간 삼촌에게 듣던 무섭고 이상스럽던 동화들...반짝 거리던 가로등의 불빛들.. 유일하게 살았던 아파트가 아닌 주택가에서 뜰쪽에 있던 강아지가 무서워서 옥상에 올라갈때면 계단..
일찍 시작하는 과외 때문에 아침만 먹고 나와버려서 내가 좋아하는 갈릭허브스틱을 살 겸 기분좋은 제과점에 잠깐 들렀다. 기분좋은 제과점...은 내가 붙여준 이름이다. 몇주전쯤에 역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려고 들어간 빵집이었는데 계산대에서 지갑을 두고온걸 깨달았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나오려고하는데 아주머니가 뜻밖에 나중에 돈을 갖다달라며 그냥 주셨다..;; 2천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단골도 아니고 처음보는 사람에게 선뜻 그렇게 믿음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알고있기에... 나에겐 사실 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다시 가게된 그곳에서 늦어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다른빵을 사면서 돈을 드렸더니 함박 웃음을 지으시면서 작은 치즈케이크를 커다란 케이크로 바꿔주셨다 >_
옆모습/ 안 도 현 나무는 나무하고 서로 마주보지 않으며 등 돌리고 밤새 우는 법도 없다 나무는 사랑하면 그냥, 옆모습만 보여 준다 옆모습이란 말, 얼마나 좋아 옆모습, 옆모습, 자꾸 말하다 보면 옆구리가 시큰거리잖아 앞모습과 뒷모습이 그렇게 반반씩 들어앉아 있는 거 당신하고 나하고는 옆모습을 단 하루라도 오랫동안 바라보자 사나흘이라도 바라보자 오늘 안도현님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 안도현님의 시 중에는 사랑했었다는 말을 하지않겠다..는 말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약간 두려워하는듯한?.. 왜그러신거에요?.. 저는 할 것 같은데..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건가요? - 사랑한다는 말 속에는 뭐라고 할까요 은유가 없는 것 같아요 은유가 없으니 그리움도 없고 울림도 없고.. 깊은 울림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하늘이지만 그래도 밤에 잠깐 내린 비덕분인지 선선해진 날씨에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과외를 마치고 길을 걷는데 할머니 두분이 길거리에서 얘기를 나누고 계신다. 한분은 색색의 머리끈과 핀을 앞에 두고 한분은 양배추와 가지와 옥수수를 앞에 두고 그렇게 차들이 앞을 향해 쌩썡 질주하는 길가에 앉아계셨다. 두분 앞에 놓인 것은 다르지만 펼쳐놓은 색바랜 갈색 천들과 이마와 빰에 깊게 드리워진 짙은 주름살과 삶의 흔적들은 무척이나 닮아보였다. 그 얼굴 곳곳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그분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에 젖어 들었다.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나비와 꽃모양의 머리끈과 먹기싫어해서 항상 혼이 나던 가지.. 그리고 그분들의 손에 패인..
세월이 흐르고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각종 잡다하고 끝이 없어보이는 일상 속의 과제를 해내고.. 나도 어느덧 사람이 살아간다...란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많은 일 중 몇가지를 거쳐오고 있다. ... 그중 나에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친구, 가족, 동료, 선후배, 은사, 제자 등의 여러가지 이름표를 달고 있는 그것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하기도 하고.. 한때는 나의 속을 너무나 가슴아프게 휘져어 놓기도 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운게 대인관계일 것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점점 삶의 종착지를 향해 한발을 내딛어 갈 수록 나와 한평생을 살아갈 누군가를 찾아낸다는 것이..
사람을 만날 때 초반에는 서먹서먹함을 없애고 빨리 친해지고 상대방을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한다. 더 좋은 인상으로 다가가기 위해 웃는 표정과 가끔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고 말도 조심조심한다. 그런데 결혼 5년,10년 2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은 가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나마저 불안하게 한다. 사람의 기억력은 너무나 이기적이라 자신이 가까워지고 싶어서 애써 다가간 그 거리감을 이제는 신비감이 없고 너무 지루하다는 이야기들로 채워나가기 시작하니까... 저 시를 읽고 너무나 슬퍼졌다. 항상 처음같을 수는 없는걸까. 정말 그게 너무나 어려운걸까... 50년을 함께 살았는데 아직도 신비감이 느껴진다면 그것도 어찌보면 무섭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어느정도 선에서 사생활을 갖는 것도 아주 중요한 ..
장식론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다. '씻은무" 같다든가 '튀는 생선' 같다든가 그렇게 젊은날은 젊음 하나만도 빛나는 장식이 아니었겠는가 때로 거리를 걷다보면 쇼윈도우에 비치는 내 초라한 모습에 사뭇 놀란다. 어디에 그 빛나는 장식들을 잃고 왔을까? 이 삐에로 같은 생활의 의상들은 무엇일까? 안개같은 피곤으로 문을 연다. 피하듯 숨어보는 거리의 꽃집 젊음은 거기에도 만발하여 있고 꽃은 그대로 눈부신 장식이었다. 꽃을 더듬는 내 흰손이 물기없이 마른 한장의 낙엽처럼 슬쓸해져 돌아와 몰래 진보라 고운 자수정 반지 하나 끼워 달래어 본다. 그림: 강영균 글: 홍윤숙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다가 결혼후 7년간을 처녀로 살았고 너무나 단조로울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진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