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시시콜콜한 이야기 (1875)
언제나 날씨는 맑음
전시관 내엔 사진촬영이 금지라 작품 사진은 없다. 산책로만랑 그 주변의 석조 정원들만 한참 걷다 찍어온 :) 호암미술관 30주년 기념으로 '한국미술에 등징하는 용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에버랜드에 갔다가 겸사겸사 들러서 보고 왔다. 어쩌다보니 놀이동산보다 미술관에 있었던 시간이 더 길었네;; 1층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최소한의 조명만 사용한 어둑한 전시실에 온통 화려하고 위압적으로 그려진 가지각색의 용 그림에 압도되는 느낌이라 혼자 관람하니 처음엔 좀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_-;; 확실히 민화에 그려진 용은 귀엽고 우스꽝스러운 반면, 왕족들이 사용하던 집기에 그려진 용은 아주 위엄있고 사납기 그지없다. 탁 트인 정경이 한번에 들어오는 2층. 도예실은 공사중이라 들어가지 못했고, 전통가구들과 민화들을 구경..
호암미술관은 항상 가을이나 봄에만 왔어서 이렇게 겨울에 방문한건 처음 한국미술에 등장하는 용과 관련된 전시를 보고 왔다. 호수랑 조형물들이 어우러진 산책로가 참 예쁜데, 겨울이라 나목들인데다가 호수가 다 얼어있어서 아쉽다. 하지만 겨울은 또 겨울 나름대로 조용하고 운치있어서 미술관 들어가기 전에 한참 걸어다녔다. 바람이 꽤 불어서 따뜻하게 입고 나오길 잘했다고 몇번이나 안도를 ^^:; 날이 추워서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지, 미술관 2층은 회화관만 개방하고 다른 한관은 공사중이다. 산책로도 눈이 더럽혀지지 않고 쌓인 그대로라 발자국이랑 손자국 처음으로 남기면서 걸었다 ㅎ 커피 마시려고 자판기쪽으로 가는데 공작이 너무 태평하게 거닐고 있어서 깜짝 놀란 ㅎㅎ 산책로 주변에 공작이 꽤 많아서, 걷다보면 무슨 ..
고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방문한 에버랜드. 작년엔 롯데월드. 올해는 이곳이다. 학생들 데리고 놀러갔다 왔다....라기보다는 놀이동산 도착 후 방목 ㅎㅎ 원래는 스키장 가려고 했는데, 스키 못타는 학생들이 있어서 에버랜드로 왔다.. 용인까지 의외로 1시간정도면 도착해서 그리 멀다는 느낌은 없었던.. 날이 추워서 동물들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파리에서 곰이랑 호랑이랑 따뜻한 온돌에서 나른하게 있는거 보니까 즐거웠다. 호러메이즈는 들어가고 싶었는데 운영을 안하는ㅠㅠ 티익스프레스도 마침 점검 중이라 패스...절대 무서워서가 아님 -_-;;; 학생들 피해서 캐리비안베이에서 놀았는데 꼬마애들이 점령 =ㅁ=;; 방학이라 그런지 힐사이드 호스텔 같은 에버랜드 내 숙박업소에서 묵는 가족들도 꽤 많아보였다. 4..
제1회 자음과 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소설. 작가인 박솔뫼 씨가 등장했던 팟캐스트를 듣고 찾아 읽게 되었다. 나와 동갑인 작가의 이력을 읽고, 아 이제 드디어 내가 속한 세대에서도 주목받는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와 동일한 시대를 살아온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의 틀은 어떠한지. 어떤 사다리를 놓고 어느정도의 높이에서 세계를 관찰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작은 포켓북 사이즈라 금방 읽겠다 싶었지만, 초반부에서부터 약간의 혼란을 느껴야 했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 인물들의 성격과 관계를 대략 정리하고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는 편인데, 국적도 인종도 성격도 살아온 인생도 모두 베일에 싸여있는 작품 속 상황에 적응해야했기 때문이다. 이름 역시 성별이 잘 매치되지 않아서, '을'은 여자주인공,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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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비테프스크 위의 누드 Nude over vitebsk,1933 '선생님.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어른들은 어떻게 해요' ..라고 어느날 기운 없는 목소리의 학생이 물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비슷한 꿈을 꾸고 있었다. 꿈에서 나는 어느 국밥집에 앉아있었다. 좁다랗고 추레한 의자와 나무탁자. 압도될만한 크기의 가마솥. 처음 보는 곳.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여기저기 놓인 가마솥 때문에 사방에서는 엄청난 양의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내 앞에 놓인 커다란 그릇에 내 눈 앞 역시 뿌옇게 가려졌다. 그리고 맞은편 좌석의 남자가 몸을 돌렸을 때, 나는 그 남자가 바로 '그'임을 알아차렸지만 난 일어나서 그를 부를 수도, 뚜렷하게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간신히 숨을..
이 책은 평범한 직장인이던 오영진 씨가 1년반 동안 북한에 파견근무하게 되면서 겪은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놓은 책이다. 원래는 기 들릴의 '평양'을 보고 싶었지만. 중고서점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절판서적인 관계로 다른 책들을 찾다가 오영진 씨의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말이 어느정도 통하는. 그리고 평범한 한국인이기에 좀더 친근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이 책은 기 들릴의 시니컬하고 관조적인 말투와는 달리, 한민족으로써 느끼는 복잡미묘한 시선이 담겨 있다. 감상적이거나 눈물콧물을 짜게하는 대목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다보면 어딘지 훈훈한 정이 느껴져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와 다르고, 사상과 언어도 조금씩 달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북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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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꼬맹이 시절 내 모든 일과는 인형들이 함께했다. 내가 잠자리에 들면 인형들도 화장지 이불을 덮고 곱게 누었고, 목욕탕에 갈 때는 인형들도 꼭 챙겨서, 엄마가 나를 씻겨주듯이 인형들을 깨끗하게 단장시키곤 했다. 내가 노란 원피스를 입은 날엔 미미와 쥬쥬도 노란 드레스로 멋을 부렸고, 내가 구사하는 어휘가 늘어날수록 소꿉놀이의 상황도 점점 다양해졌다. 남동생은 인형일색이던 나보다 훨씬 풍성한 구성을 갖추고 있었는데, 기계음과 붉은 빛이 나오는 로봇들, 칼과 트럭들, 공룡들,레고세트들...이 몇 박스를 가득 메웠다. 특히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커다랗고 미로 같은 철로에 번쩍번쩍 불이 들어오는 기차를 우리가 얼마나 좋아하며 갖고 놀았는지 모른다. 동생 덕분에 나 역시 발음하기도 힘든 공룡의 이름을 줄줄..
둥실한 달이 떠오른 지 한참 지나고, 빛과 어둠이 묘하게 교차하는 밤. 티비에서 통속극들이 흘러나오는 시간. 한창 출출해질 이즈음 집집마다 치킨이나 피자처럼 즐겨먹는 음식이 있겠지만, 우리집은 마치 매일 이루어지는 성실한 의식처럼 한밤에만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잔치국수. 아빠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거의 늦게 오는 일이 없는 편이셔서, 저녁시간엔 다같이 모여서 책을 보거나 수다를 떨었고 그도 아니면 앉은뱅이 상을 펴놓고 낮에 한 숙제를 검사받곤 했다. 책상이나 식탁이 있었음에도, 아빠가 공부를 봐주거나 야식을 먹을 때는 언제나 동그란 모양에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는 앉은뱅이 상이 등장했다. 상에 마주앉아 아빠가 물어보는 구구단이며 영어단어들을 머리를 쥐어짜가며 읇조리고 있으면 나를 해방시켜..
밤새 눈이 내린 다음날. 김영랑의 시 중에 '돋쳐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라는 문장이 있는데 햇빛에 반짝반짝 거리는, 거리와 나무의 하얀 눈을 보니 갑자기 저 시구가 생각났다. 겨울이라 그 빛이 다소 약하더라도, 저렇게 빛나는 것이 참 아름답구나. 예전에 신영복님이 20년 넘는 수감생활 동안 어떻게 자살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햇빛'이라고 대답하신 것이 떠올랐다. 북서향 독방에 들어오는 '햇빛 시간'은 하루에 두 시간 남짓이었는데, 아주 많이 들어와봐야 겨우 신문지를 펼친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가 길을 지나치면 그냥 무심히 지나갈 그런 평범하고 작은 햇빛. 그런데 '그 햇빛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을 때 정말 행복했고, 내일의 햇빛을 기다리고 싶어 죽지 않았다'고 대답 ..
작년에 재밌게 읽었던 만화책 중 하나는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를 위하여' 였다. 연초에 상상마당에서 우연하게 봤던 이 책의 뒷부분이 너무 궁금해서 결국 만화책을 구입해서 마저 보았더랬다. 그 이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에 관심이 생겨서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다시 뒤적였고, 아리 폴만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을 챙겨봤다. 결국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에 이어, 오늘 글을 쓰려고 하는 '굿모닝 예루살렘'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위의 작품들을 보면서, 예전에 마르얀 스타라피의 '페르세폴리스'를 보면서 궁금했던 것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형상화 돼서 참 좋았다. '굿모닝 예루살렘'은 기 들릴의 이전 작품들처럼 '국경 없는 의사회-MSF-'에서 일하는 아내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1년간 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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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 기사들의 재밌는 것 몇가지. 책 읽다 웃겨서 적어본다. -'음식 먹는 것을 보면 성질을 압니다' 1935년 동아일보 '아십니까' 칼럼 中 *밥을 먹으면서 골을 내는 사람은 정견이 없는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추운 때에 찬밥을 그냥 먹는 사람은 돈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반대로 너무 뜨거운 것만 찾는 사람은 가정에서 싸움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밥 먹을 때에 음식을 흘리거나 입속의 것이 나오는 사람은 몸이 약하고 또 활동력이 적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부자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음식 먹을 때에 너무 난잡하게 먹는 사람은 늙어서 어려워질 사람입니다. *음식을 급하게 먹는 사람은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서 무슨 일에나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천천히 먹는 사람은 신경질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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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의 빈틈을 온기로 채워나가기. 영화 '비지터'는 삶의 밀도가 너무 작아져버린 노교수 월터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그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내가 죽은 후, 홀로 단조로운 생활을 한 탓에 대인관계 스킬 따위 내던져버린 무뚝뚝한 노인이다. 매일의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피아노를 배워보려하나, 이것도 나이탓인지 쉽지가 않다. 강의 하나를 맡고 있지만 십년 째 같은 강의록에 같은 수업내용을 거듭하며, 이런 강의는 당연히 기계적이고 재미 없는 일상의 반복이 되어버린다. 발표논문 역시 이름만 올린 것일 뿐, 개인적인 성취감은 없다. 그런 그가 울며겨자 먹기로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뉴욕에 방문하면서 사건은 발생한다. 한참동안 비워두었던 뉴욕의 집에, 부동산업자의 농간에 의해 불법체류자 커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오갈데..
하루 하루 매일같이 행복한 척 하는 것이 미친겁니다. 미쳤다는 건 비참한 존재가 되어, 반쯤 잠들어 멍하게 돌아다니는 겁니다. 하루 또 하루, 매일같이 행복한 척하는 게 미친 겁니다. 다 잘되고 있는 척 하는 건 평생을 그런 척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잠재력과 희망, 모든 기쁨과 감정, 삶의 모든 열정을 빨아먹어버립니다. 손을 뻗어 그걸 단단히 잡고, 피를 빨아먹는 것들에게서 다시 빼앗으세요 집에서 혼자 있을 때와 직장에서의 나의 모습, 친구들을 만날 때와 어른들을 만날 때의 나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 전자가 자유분방하고 한없이 태평한 모습일 때가 많다면, 후자는 좀더 신중하고 야무진 모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지킬과 하이드처럼 완벽한 이중성까진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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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꽤 많은 작품이 영화화된 유명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을 접한 건 이 책이 처음이다. 그 이유는 몇몇 작가들을 제외하면, 추리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작품이 영화화된 리플리 시리즈 같은 것은, 대부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라 본적이 없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리플리라고 하면, 난 정신병 내지는 mbc드라마 '미스리플리'만 떠오를 뿐 ;;) 이 책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선집 4권 중 하나인데, 위와 같은 사항들 때문에 내가 이 책을 구매한건 순전히 '제목이 독특해서'였다. -동물애호가를 위한 잔혹한 책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이렇게 차가운 느낌이 나는 제목에 끌려서, 두 권을 구매하고야 만 것이다. =ㅁ= 동물애호가를 위한 잔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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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엄마가 집에 오신! :) 어제 이모댁에서 주무시고 오셔서, 이모가 나한테 주라고 한 곶감이랑 과일이랑 이것저것 가득 안겨주셨다. =ㅁ= 엄마가 아침만 일찍 드셨다고 해서, 점심 겸 저녁을 차려먹었다. 밖에 나가서 비싼거 사드리려고 했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_-;;; 대충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들어 먹었다 ㅠ 엄마 오기 전에 미리 만들어놔서, 생선만 새로 굽고 나머진 그냥 데우기만 함 난 생김치는 잘 안먹는 편인데, 엄마랑 먹는거라 같이 놨다. 두부김치전골+김+호박전+고등어자반구이+김치. 전골에 떡이랑 라면이랑 버섯 듬뚝 얹어서, 참치액이랑 돼지고기 넣고 끓였더니 시원해서 좋았다. ^^
예전에 행복전도사로 유명하시던 분이, 오랜 투병생활 끝에 고통스럽고 일상적인 삶을 포기해야하는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 남편과 동반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그 유서가 너무 충격적이면서도 마음이 아팠는데, 자살이란 이유로 그 기사에 달린 많은 비난 댓글들을 보면서 잠시 멍해졌었다. 자살은 예방하고 방지해야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사람마다 아픔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폭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비참한 삶과 목숨을 의미없이 이어가는 것보다,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을 비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자살은 죄악..지옥불.. 어쩌고 하는 기독교신자들의 말을 정말 싫어한다. 실제로 이 이야기를 나에게 했던 사람한테 오만정이 다 떨어졌을 정도로. 그렇게 죽을 힘으로..
오빠가 주말에 뭐먹을지 생각해 두라고 했는데, 금요일날 갑자기 게가 먹고 싶어진.. '-' 저녁에 카톡으로 '오빠야. 갑자기 게 먹고 싶다. 갑각류가 필요해! ' 했더니 '아 그래? 그럼 간만에 랍스터나 킹크랩 먹을까?' 바로 호응해 주셔서 주말 저녁은 이곳에서 먹게 되었다. ㅎ(사실은 로브스터가 표준어인데, 쓸때마다 자장면처럼 어색함 -_-;;) 사실 내가 먹고 싶었던건 얼큰한 꽃게탕 같은거였으나, 홍대나 여의도에서 딱히 파는 곳도 없을 것 같고 오빠가 랍스터회를 먹고싶어하는 눈치라, 예전에 갔던 음식점으로 향했다. 신길동에 있는 랍스터, 킹크랩 전문점.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쓴다. 지금 가리비랑 킹크랩은 물량이 없어서 랍스터 한종류만 팔고 있었는데, 원래는 킹크랩이나 랍스터를 시키면 가리비회도 함께..
김영하 작가의 오빠가 돌아왔다를 꺼내든건 그의 팟캐스트를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다. 그의 다른 소설들처럼 역시 술술 읽혀서, 다른 일들 때문에 책을 한두번 덮은 것을 제외하면 거의 중단하지 않고 단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2004년에 나온 동명의 단편집이 재출간된 것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판본은 2010년에 나온 후자의 것이다. 이 책을 이렇게 오래 방치해둔 것은 김영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뭔가 불편하고 갑갑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건 비교적 위트가 넘치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같은 단편집에서도 그랬고 '빛의 제국'이나 '퀴즈쇼'와 같은 장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난 그의 장편집을 꽤 힘겹게 읽거나 아니면 차라리 빠른 속도로 끝내버리는 편이었는데 같은 이유로 딱히 리..
다들 일찍 퇴근하는 날이라, 우리집에서 영화보기로. 저녁은 가볍게 먹자고 해서, 간단한 야식정도로 준비했다. 여름에 우리집에서 에어컨 켜놓고 영화 본 이후로 간만이네. 오늘의 메뉴는 해물 듬뿍 넣은 뚝배기떡볶이랑 시금치랑 치즈 넣고 만든 김밥 2줄이다. 해물떡볶이 속 새우는 네 마리!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설마 양이 적을까 했는데 수다 떨면서 먹다 보니 다들 더 먹자고 해서 밥까지 볶아 먹음 ㅎㅎ 난 김밥 말면서 꼬다리 먹은 뒤라, 중간에 포기하고 이탈 =ㅁ=; 과일이랑 초코 아이스크림은 후식. M이랑 Y가 무알콜 칵테일 사오고, J는 완전 커다란 초코 퍼지 아이스크림 사옴 ㅎ 와인이랑 칵테일 따고, 아이스크림 듬뿍듬뿍 퍼놓고는 프로젝터 켜서 각자 편한 자세로 영화를 봤다. 누구는 소파에 누구는 ..
예전에 남자친구가 명절에 부모님께 용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장인인데 아직도 용돈을 받아?'라고 장난스럽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의 대답이 꽤 신선했는데, '노인네들 늘그막에 이렇게 자식들한테 조금이라도 용돈 쥐어주시는게 쏠쏠한 재미신가봐. 이제 다 퇴직은 하셨지만, 부모 노릇하시는 기분이라고 받아가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나도 이제는 별말 없이 용돈 드리고, 명절에 가면 나도 받고 그래' 라고 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까. 우리 엄마도 이제 요리를 다 할 줄 아는 나에게 언제나 본가에만 가면 그렇게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쉴새 없이 내 입에 물려주려고 안달이셨던 것이다. 마치 내일이면 굴 파고 길고긴 동면에 들어갈 북극곰 마냥. 그러면 나도 '아..엄마, 나 배부른데' 하면서도, 아기새가 어미..
남들은 저를 무척 바쁜 사람으로 봅니다. 늘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해대며 허덕거리기 때문입니다. 밥 먹을 때나 화장실 갈 때는 꼭 신문이나 책 , 잡지를 들고 가고, 걸어 다닐 때도 어학 강의든 오디오북이든 음악이든 무언가를 들으려 노력했습니다. 집을 나설 때면 꼭 책을 들고 가고, 손에 책이 없으면 근처 서점이나 편의점에 들러 결국 읽지도 않을 책이나 잡지를 삽니다. ....저는 제가 가진 몇 안되는 장점 중 하나가 '몰입을 잘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지속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그렇지, 단기 집중력은 탁월한 편이라고 자평하곤 했습니다. 하지만제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런 단기적 몰입마저 지적, 감정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워 나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에 한했던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흥..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본 영화 '심플라이프' '우리도 사랑일까'도 함께 봤는데 두 작품 모두 상영관이 많지 않아서 일부러 씨네큐브로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동화 중 '토미 드 파올라'의 '오른발, 왼발'이란 책이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할아버지 보브는 어린 손자 보비에게 '오른발,왼발'을 맞춰가며 한발한발 천천히 걸음마를 가르친다. 그리고 어느날 할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다시 블록을 쌓거나 걷지 못하게 되었을 때 보비는 어릴적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해줬던 것처럼 '오른발, 왼발'을 외치며 한걸음한걸음 걸음마를 보브와 함께 내딪게 된다. 이 동화를 볼 때마다, 어릴 적 나에게 코끼리 그림을 그려주던 할아버지나 뜨개질을 가르쳐주시던 할머니 생각이 나서 괜히 마음이 찡해지곤 한다. 그리고 오늘 '심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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