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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날씨는 맑음
스탠딩 에그. 사랑에 빠져 본 적 있나요. 화이트데이와 발렌타인데이. 연말 크리스마스 한달전 정도의 기간은 이른바 소개팅 시즌이다. 수많은 남녀가 특별한 그날을 나와 함께 나눌 누군가를 고대하며, 약속을 잡고 고민와 설렘 가득한 문자를 주고 받는다. '소개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은 바로 파스타이다. 고급스러운 한정식집이나 스테이크처럼 거창한 이미지거나 부담스러운 가격대도 아니고, 호불호가 크게 나뉘지 않는 무난한 맛을 자랑하며, 한국에 들어온 대부분의 서양 음식점들처럼 어느정도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을 기대할 수 있기에 파스타는 소개팅의 음식이다. 지인 중 한명이 계속 되는 소개팅에 진절머리를 치며, '이제 파스타도 지겹다'는 성토를 늘어놓았을만큼 파스타는 우리의 소개팅 문화 깊..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정말 재밌게 읽었던 지경사와 마니또 문고의 명랑소설 시리즈들. 아름다운 하지만 개성이 뚜렷했던, 쌍둥이 발레리나 시리즈와, 영국의 고급 기숙학교를 다니던 말괄량이 시리즈. 자다가 깨서 정보의 바다를 유영하던 중 어느 헌책방의 판매글을 보고 너무 반가운 마음에, 혹시나 잊을까 싶어서 글을 써본다. (이미지는 해당 다음 블로그에서 빌려왔다.) 그나저나 금발머리로 예쁘게 색칠하는건 모든 아이들의 공통점인가보다 ㅎ 나도 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책이 지저분해지는게 싫어서 꾹 참았던 기억이 있어서 저 사진에서 머리카락을 칠해놓은걸 보고 한참 웃었다. 어릴 때 지극히 소녀취향이었던 나는 처음 읽었던 소설이 작은아씨들부터 시작해, 빨간머리앤과 같은 감성 넘치는 작품들이었는데 초등학교 무..
서울로의 쏠림 현상이 강한, 한국의 기형적인 대학구조에 따라 우리 과 역시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동기나 선후배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과 특성상, 정원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므로, 단과대 내에서 적어도 같은 학번인 동기들은 모두 얼굴을 알고 지냈을 정도였다. 때문에 우리 과의 분위기는 커다란 대학교라기 보다는 마치 중고등학교의 한 반의 느낌이 더 강했다. 과인원이 적다보니 전공수업도 많아야 2,3개의 반으로 개설되어서 수업을 들어가 보면 항상 아는 얼굴들이 웃으며 나를 반겨주어 인사를 하며 들어가거나 아예 시간표를 짤 때 친한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의논 끝에 함께 완성하곤 했다. 내 친구들 역시 자취하는 동기들이 몇명 있었는데, 이런저런 고달픔이 많은 자취생의 특성상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마트..
디에고 벨라스케스, 실 잣는 사람들,1657 어릴적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거미와 관련된 이야기 한토막을 접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로마 시대의 작가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Metamorphoses'에 등장하는, 아라크네에 관한 고전 신화가 오늘 풀어나가려고 하는 이야기의 모티프이다. 그림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학부생 시절 마지막 있었던 발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는 과 특성상 거의 매 수업마다 학생들의 발표가 진행되었고, 절대다수가 여학생이었기 때문에 다들 경쟁심도 있어서 발표는 깔끔하고 인상적인 ppt부터 몇차례의 사전연습까지, 꽤 정성을 다해 준비하곤 했었다. 4학년쯤 되면 수없이 반복된 발표에 다들 능숙해져서, 어지간 해서는 형편없는 발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가 들었던..
글을 시작하기 전. 비올 때 즐겨듣는 노래.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좋아하시길 바라요 :) 음식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관용구가 있다면, 바로 그것은 '음식은 손맛'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만약 손맛으로 음식을 줄 세울 수 있다면 그 첫 번째 자리에는 '수제비'가 있을거라고 언제나 생각하곤 한다. 왜냐하면 수제비는 그 어떤 음식보다 손을 많이 사용할수록 맛이 있어지는, 시간과 끈기를 요구하는 반죽 만들기 과정이 필요한 음식이니까. 알고보니 내 첫사랑이었던 선배가 드라이브 겸 데려갔던 삼청동 한구석의 수제비도 소중한 기억이고, 아빠와의 낚시 여행에서 끓였던 수제비라면도 좋은 추억이지만 역시 가장 자주 먹었던 수제비는 비오는 날 엄마가 해주시던 그것이다. 그렇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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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자취생의 음식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건 라면이다. 그 다음 순위는 햇반정도가 될까. 요즘은 닭이나 사골 육수를 이용한 라면이나 다이어트라면 등 제법 고급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시 가장 맛있는건 기본의 매콤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어우러지는 그런 라면들이다. 요즘은 라면 가격도 많이 올라서 천원 남짓의 가격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라면은 소박하고 값싸며 손쉽게 한끼를 때울 수 있는 서민적인 음식이다. 동시에 귀차니즘에 찌든 이 땅의 수많은 자취생들에게 고칼로리를 선사하는 영원한 동반자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내 자취생활에서 라면은 그다지 기억에 남는 음식이 아니다. 평소에 밥이나 반찬이 떨어지는 경우도 거의 드문데다가 라면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아서, 라면은 어..
풍성한 말꾸러미가 돋보이는 소설. 성석제 특유의 언어유희에서 오는 골계미와 만연체문장이 돋보인다. 촘촘한 내용과 전개를 미덕으로 갖춘 소설은 아니지만, 한바탕 언어의 나라에 몸을 듬뿍 나오고 온 느낌이다. 유쾌하게. 할머니에게 옛이야기 듣듯이 술술 읽힌다. 이분의 소설을 여러편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의 어딘가가 자꾸 겹치지는 느낌이 들어 묘하다. 도둑의 도를 말할 때는, 거지의 예를 말했던 모 글이 생각나서 재밌기도 하고. 가장 좋은건, 역시 성석제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 혹은 그의 에세이. "야, 이 도둑놈아!" 누가 뒤에서 그렇게 부른다면 백 사람 가운데 아흔아홉은 돌아볼 세상이건만 한 사람만은 묵묵히 자기 길을 갈 것이니 그의 이름은 바로 이치도이다. 제대로 도둑질도 못 하는 도둑놈들이나 남들이 소..
신문사에서 미술담당 칼럼을 주로 써온 손철주씨와 서양미술사 전공자인 이주은씨의 그림이야기.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꽤 되었는데, 그림 관련 글들은 사실 꽤 식상해지기도 했고 그냥저냥 별로 끌리질 않아서 구매하지 않고 있다가 도서박람회에서 세일 중이길래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손철주씨는 주로 동양화를, 이주은씨는 서양화를 통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화답하는 편지의 형태로 이루어져 다소 독특한 느낌이다. 보통 한명의 저자가 그림에 대해 쓸 경우 읽다 보면 다소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은 지리함이 느껴지는데 저자가 두명이고 주제를 정해놓고 주고받는 형식이라 그런 감이 좀 덜했다. 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그림과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기도 했고. 낯익은 그림들도 꽤 보였지만, 처음 보는 좋은 그림들도 ..
Romare Bearden. Patchwork Quilt. 1970. 비어든의 패치워크 퀼트는 흑인여성의 느긋한 낮잠자는 모습과, 갖가지 천으로 이어붙인 퀼트천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천들은 아주 낡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크기도 문양도 제각각이지만 버려지지 않고 새롭게 활용되어 고상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가장 화가 날 때는 어떤 부당한 일을 저지른 누군가가 '그럴만해서'라는 변명을 내세울 때이다. 우습게도 이 변명은 항상 강자가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했을 때 떳떳하게 덧붙여지곤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숙제를 하지 못했을 때 '그럴만 해서'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한다. 또한 수업 시간에 늦었거나 심지어 컨닝을 했을 때도 '그럴만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계속 아파트라는 성냥갑 집에서 살아왔지만, 나에겐 한옥과 관련된 각별한 추억들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전라도 어느 마을에 큼지막하게 자리한 친가 덕분이다. 너무 먼 탓에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방학 때마다 난 친가에서 한참동안 머물곤 했다. 특별히 재미난 것이 있는 고장도 아니었고,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먹거리가 풍부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 곳을 너무나 사랑했다. 아기자기하고 작았던 동네 국민학교와 동그랗고 완만한 능선의 뒷산들 워낙 작은 고장의 토박이였던 친가탓에, 어느 골목의 구멍가게에 가도 '동백꽃집 손녀 맞지라우? 아따 참말로 지 아베랑 어쩜 이리 꼭 닮았능교' 라고 사탕 하나 더 쥐어주시던 할머니들. 친가는 그 옛날부터 마을에서 손꼽히는 부자로, 독립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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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우리집의 저녁풍경은 언제나 비슷했다. 따땃하게 뎁혀진 방바닥에 배를 깔고 만화를 실컷 보거나 미미나 쥬쥬인형을 가지고 인형 놀이를 하는 느긋한 일상. 그러다가 현관문 밖으로 터벅터벅.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쏜살 같이 아이템플이나 구몬 등을 펼쳐놓고 숙제를 하는 척 연출하곤 했다. 엄마의 '어우 지지배 여우짓 하는거 봐' 하는 핀잔과 함께 초인종이 울리면, 곧 아빠가 들어오셨는데 내가 가만히 앉아서 숙제를 하고 있는 걸 보면 함지박 웃음을 지으시면서 '우리딸 이리 와 봐'를 외치셨다. 그 말 뒤에 이어지는 대사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빠가 통닭 사왔다'였다. 이 '통닭'이라는 단어는 우리 식구가 모두 뿌듯해지던 마법의 단어였는데, 왜냐하면 이 날은 어김없이 아빠의 '월급 타온 ..
오늘은 하루종일 강의실에 갇혀서 꽤 많이 쌓인 모의고사 기출 문제집과 씨름했다. 아주 가끔 네모반듯한 커다란 교실에서 역시 각이 진 거대한 유리칠판 앞에 서 있자면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곤 한다. 특히 햇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봄이나, 쨍한 하늘빛이 눈부신 가을날이면 괜시리 이런저런 감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섣불리 일탈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른이 된 후 너무 많이 우리를 얽매고 있는 수많은 족쇄들 때문이다. 그 족쇄는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계획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 때 우리를 불안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어쩐지 구름 낀 날씨에 기운마저 없어서 따끈한 음식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섰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는 물줄기. 마치 시냇물이 하늘에서 거꾸로 흐르..
몇년 전 군입대를 앞둔 친구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난 평소에 친한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대신, 가볍게 식사를 잘 챙기라거나 무엇을 먹었는지 질문을 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도 아마 버릇처럼 며칠 뒤면 훈련소로 향할 그 친구에게, 입대 전날 어떤 음식을 먹을건지 가볍게 물어봤었다. 군대에 다시 가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몇몇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사형을 앞둔 죄수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는 것 같은-_-;; 그런 느낌이기도 했는데 과연 이 사람은 절박한 상황에서 어떤 맛을 가장 원할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평소에 집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라, 다른 머스마들이 으레 그렇듯이, 오랜만에 엄마가 해주는 진수성찬에 고기 반찬을 잔뜩 먹겠거니 하고 어느정도 미리 대답을 예상한 상태..
나는 한국이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변하게 된 가족관계를 다룬 소설들을 참 좋아한다. 어머니에게 아무 물질적 도움을 받은 것이 없다는 이유로 아주 작은 짐조차 지고 싶어하지 않은 아들이 등장하는 이청준의 '눈길'이나,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당숙 아저씨와의 동거로 인해 첨예한 갈등을 겪게 되는 가족을 그린 공선옥의 '일가'는 핵가족화가 되면서 말로만 가족이며 일가(一家)이지 실제로는 타인보다 불편해진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육친들과 살을 맞대고 사는 느낌을 느껴본적이 없어서인지, 이 작품들을 배울 때면 저 소설들의 미묘한 느낌을 잘 포착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사실 핵가족에 익숙하고, 대가족의 끈끈함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건 나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왜 이리 이 작..
난 대학 1학년 때부터 자취를 시작해서, 졸업을 하고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쭉 독립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에야 혼자서 육첩 칠첩 반상을 냉큼 차려놓고 먹기도 하고, 이런저런 반찬들을 항상 끊이지 않게 해놓고 있지만 초기 자취 생활의 내 식탁은 한동안 꽤 좌충우돌의 격정기를 거쳐야만 했다. 지금까지 엄마가 매끼마다 반찬을 바꾸며 만들어 놓은 각양각색의 음식들만 야금야금 먹었던 평범한 여자애였던데다가. 이제 막 시작한 독립생활로 청소부터 시작해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한다는 부담감에 휘청거릴 때라 첫 반년간은 꽤 고생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상한 벌레가 나왔다고, 엄마에게 새벽에 전화해서 울기도 했으며 처음 살아있는 꽃게를 손질하려다가 움직이는 꽃게발에 혼자 놀라서 넘어지는 ..
우리가 나이듦에 따라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는 아마 '추하다'는 단어일 것이다. 젊은이들이 밉살맞은 짓을 하거나, 어린 아이들이 악동짓을 할 때는 좀처럼 붙지않는 이 단어는, 유독 나이든 누군가가 방정맞은 짓을 할 때 어김없이 등장한다. 아마 세상 사람들은 늙음은 추함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혹자는 늙음은 낡음이 아니지만, 낡는 순간 그 사람은 늙은 것이라 표현하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설렘이 없어졌을 때 그 사람은 늙은이가 되어가는 것이라 말한다. 사실 '황혼'이라는 고운 이름으로 노년기를 바라본다면, 늙음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제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격동의 세기를 모두 보내고, 느긋하게 뒤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노을짐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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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계획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음식 하나, 그림 하나씩을 골라서 번갈아 가며 글을 쓰려고 한다. 사실 이렇게 레시피 없이 담담한 이야기가 실린 글들이 그리워 블로그들을 찾다가 없어서 결국은 내가 하게 된 것. 계속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일인데 이제야 겨우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새로운 문을 열어본다. :)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구글 검색을 통해 가져왔다) 어릴 적 우리집의 일요일 아침 밥상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게장과 갈치국 등 각종 생선과 해산물로 이루어진 식탁. 어머니는 평일에 거의 집에서 식사를 못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항상 일요일 아침은 바다내음 물씬 풍기는 식단을 짜셨다. 하지만 문제는 어릴 적 나는 소머리국밥 냄새만 맡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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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하는 몇가지 행동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요리이다. 평소에 하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장인이 작품을 만드는 느낌으로 온갖 공을 들여 멋지게 완성하고 나면 그 뿌듯함에 어쩐지 마음의 짐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 때의 요리는 어떤 꼼수나 기구도 사용하지 않고 정석대로 차근차근 아주 성실하고 정직하게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가장 큰 기쁨은 이렇게 만든 요리를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다. 때문에 난 혼자 우아하게 먹는 화려한 식탁도 사랑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소박하게 차린 밥상 역시 매우 아낀다. 아픈 연인을 위해 차려낸 죽 한사발을 누가 초라하다 할 것이며, 생일을 맞은 엄마를 위해 처음으로 만든 어설픈 미역국을 누가 욕할 수 있을까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손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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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다려지는 것이 있습니다.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가에 떠 있는 새털구름 한 조각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마른 풀잎 같은 것도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까요.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씩의 벌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본 것들 가운데 가장 황량한 풍경의 그 가장자리에 지금 서 있습니다. 벌판을 가로질러 멀리 뻗은 길을 누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걸어가고 있는 그를 나는 누구라 부를까요. 시인의 할 일은 한 송이 들꽃의 잎사귀를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을 묘사하는 일일 것입니다. 아직도 기다려지는 것들과 벌판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그려내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기다려지는 것들의 이름과 가슴속을 자꾸 걸어가는 그의 이..
앤드루 와이어스, 결혼, 패널에 탬페라, 1953년, 61X61 오늘 본 가장 슬픈 기사는, 60대 노부부의 동반자살 소식이었다. 이 부부의 죽음 뒤에 남은, 통장잔고는 3천원. 자식의 도움이나 주변과의 교류가 전혀 없는 상태로 계속 생을 이어가던 부부에게, 수입은 월 15만원의 노령연금이 전부였단다. 1인당 월 7만5천원으로 몇년간 삶을 이어간 셈인데, 장례비로 사용하라고 신권5만원으로 50만원을 남겼다는 기사의 말미를 보고는 참 마음이 아득해졌다. 자살은 자존감이 낮은 자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초라함을 자신의 내적 모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꼿꼿한 마음의 대를 가진 사람의 것이다. 열망, 증오,권태의 감정을 알지 못하고, 감수성을 철저하게 죽인 자는 절망과 좌절의 감정을 알지 못한다. 생을..
뮤지컬 중 가장 화려한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오페라의 유령. 영화로 나온 작품도 좋아하지만, 역시 뮤지컬은 현장에 가서 봐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제는 워낙 많이 봐서 가사며 음악을 나오기도 전에 미리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리지 않고 꾸준히 찾게 되는 작품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샤롯데에서 공연할 때도 배우를 바꿔가면서 몇 차례 보았지만, 로얄 알버트 홀에서 진행된 25주년 기념 공연의 장엄함에는 따라갈 수가 없다. 워낙 화려하고 커다란 홀인데다가, 전석매진되었던 기념공연인만큼 여기저기 공을 들인 표시가 역력한 무대. 작년에 전세계에 생중계 되었던 이 런던 공연을 2만원 정도에 3D 상영해준적이 있었는데, 그때 워낙 좋았던 공연이라 두고두고 볼 생각으로 구매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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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보면서 즐기는 여름의 간식. 얼음 동동 쌉싸름한 아메리카노. 녹아내리는 진하고 달콤한 맛. 구구크러스터. 많이 먹으면 배아프니까 가끔 한개씩만 꺼내먹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