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소리내어 책 읽기 (295)
언제나 날씨는 맑음
개인적으로 소설보다 티비문학관을 통해 접한 영상이 몇배는 더 좋았지만 소설을 읽다가 눈에 띄는 구절이 있어서 덧붙여 본다. 비원 쪽의 동네 어귀에 제과점이 하나 있었다. 한옥을 가게로 개조해 만든 제과점이었다. 노상규는 매일 오후 그 곳에서 혜주 언니를 기다렸다. 혜주 언니가 하교하는 길목이었는데, 언니는 한사코 제과점 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그곳을 지나치곤 했다. 가슴이 타는 듯한 그리움을 갖고서 노상규는 제과점 너머, 차갑게 지나가는 혜주 언니를 매일 보았을 것이다. ... 진실이 있으면 절제력도 생겨. 영우 오빠가 말했다. 노상규는 늘 앉는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약속된 시간보다 한 시간 쯤 전부터 그 자리에 나와 앉아 온통 유리로 된 진열장과 창을 통해 밖을 뚫어져라 내다보았다. 그녀가 집에 돌아오는..
당신은 우리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거나 말해 본 적이 있나요? 어떻게 그렇게 사랑에 눈이 멀 수 있었지? 그 사람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왜 알지 못했을까? 이번에는 잘될 거라 확신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 정말 멋져 보였어. 그 사람이 왜 변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서로 사랑했지만,우리가 한 것이라고는 싸움밖에 없어. 그 사람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해 보였어. 그래서 난 행복해야 된다고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말했지. 하지만 관계가 잘되게 할 수는 없었어. 당신이 나를 위한 바로 그 사람인가요? 예전에 심리학 수업을 들으면서 추천받았던 책인데, 그동안 잊고 있었다가 우연히 다른 글을 읽던 중에 이 책의 제목을 발견하게 되서 주문하게 되었다. 요즘 힘들고 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재를 꿈꾼다. 애정 어린 곤때가 묻은 책들이 켜켜이 들어찬 나만의 공간. 크고 화려하지 않더라도, 이 공간에 들어서면 굉장히 행복할 것 같다란 생각을 어린 시절부터 했던 것 같다. `지식인의 서재'는 제목에서처럼 서재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물리적 공간으로서 `서재'에 이야기를 한정하지 않는다. 책은 서재를 삶의 공간으로 확장한다. 때문에 15명의 인물들이 풀어놓은 서재와 책에 관한 얘기는 파노라마처럼 넓고 깊게 펼쳐진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독서에 대한 생각, 읽는 방법이 모두 달라 흥미로웠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조국교수나 김용택 시인, 이효재 선생님... 같은 분들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재미있는건 분야가 다름에..
'아담을 기다리며'는 아마 내가 대학교 1학년..20살에 읽었던 책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한 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스치듯이 언급되었던 이 책이 너무 궁금했던 차에 이 책의 출판사가 녹색평론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즈음에 하나에 꽂히면 모조리 파버리는 내 성향이 발동하여,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들 모두 읽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 책도 내 독서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이 책은 80년대 후반 하버드에서 엘리트로 살아남기 위해 힘쓰던 대학원생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부가 다운증후군인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교수, 의사, 친구들..모든 사람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는 것은 이 사회에 불필요한 생명을 내보내는 것이라며 반대한다. 하지만 이 부부는 결국 출산을 결심..
진정한 위대함 20세기 미국 문학 시간에 단골로 읽히는 소설 중 학생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작품은 단연 F.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이다. 주제가 무겁지 않고 영어 문체가 비교적 쉬운데다가, 무엇보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연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나는 학생들에게 제목 속에 있는 '위대한'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위대함'은 인간의 어떤 속성을 말하는가? 즉 그들이 생각하는 '위대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에 대해 학생들은 '자기를 희생하여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 '부·명예·권력에 개의치 않고 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사람' 등 많은 의견을 내놓는다. 그런 위대함이 이 ..
....내가 내 외로움 때문에 울 때는 아직 그가 덜 컸다는 증거고, 나와 상관없는 남의 외로움 때문에 울 수 있다면 이미 그가 다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 이 눈물은 왜 나오는 것일까. 이것도 나중에 저절로 알아지는 눈물일까. 그것은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한 사람의 외로움이 이제사 내게로 전해져 왔다는 것 뿐.
"사랑을 한다는 것은 머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산 사람의 몫이니까. 산 사람은 키와 머리칼이 자라고 주름이 깊어지며 하루에 천 개의 세포를 죽여 몸 밖으로 쏟아내고 쉴 새 없이 새 피를 만들어 혈관을 적신다. 집 안을 떠도는 먼지의 칠십 퍼센트는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온 죽은 세포라는 기사를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부터 집안의 먼지 하나도 예사로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어제의 나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제의 나는 분명 오늘의 나와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또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인 것이다. 이 이상한 논리의 뫼비우스 띠가 삶일까? 죽음만큼 안전한 것은 없다고 엄마는 말할지도 모른다. 열여덟 해를 사는 동안 나도 알게 된 것이 있다. 사랑은 불안하고 아픈 것이며 때로는 무한한 굴욕을..
..'사랑을 통해 내가 결국 나중에서야 깨달은 건 너와 나는 타인이라는 사실이다.' 언젠가 이런 문구를 읽으면서 나는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랑 할 때 되새겨야 할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가 평생 사랑하는 이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 노력을 게을리 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사랑에서 필요한 지식은 주변에 머무르지 않고, 내면의 핵심을 파고드는 고도의 지식이다. 이런 지시은 나와는 독립된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상대방의 입장으로 들어가 그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야만 가질 수 있다. 그러고 보면 한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만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서로에게 내뱉는 말.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니?" 말 안해도 다 아는 사이, 눈빛만 봐도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지금 뭘 원하는지 아는 사이, 이렇게 가까운 사이에 대한 동경은 갓난아기 적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의 기억으로부터 유래한다. 당시 엄마는 내 눈빛만 봐도 내가 배가 고픈지, 졸린지, 아니면 기저귀가 젖었는지 다 알았다. 이 떄 엄마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하나가 된 듯한 일치감은 훗날 우리가 추구하는 사랑의 원형이 된다. 굳이 내가 말을 안 해도 엄마가 다 알았듯, 사랑하는 사람 또한 다 알아주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초기에는 서로 텔레파시가 통하는 듯한 경험을 실제로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열정적인 사랑은 감각의 문을 모두 열어 놓아 직관력을..
가게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을 때, 과로라는 진단을 받고 링거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전화를 걸 곳이 없다는 것에 무척 놀랐다. 친척에게 전화하지니 너무 갑작스럽고, 내가 유일하게 걸고 싶은 번호는 지금은 없는 옛날 집 거실에 있는 그 전화뿐이었다. 그 묘한 서글픔에, 내 방 전화를 보면서 '여기서 거기로 전화를 걸 수 있다면 좋을 텐데.'하고 생각했더니 이내 울고 싶어졌다. 나는 그때, 도라에몽과 타임머신과 늘 함께 있어 주는 로봇...... 그런 얘기들을 지어낸 사람들의 깊은 고독을 상상했다. 이제는 영원히 걸 수 없는 전화, 두번 다시 들을 수 없는 그리운 목소리. 그 외로움을 해결해 줄 도구와 영원히 죽지 않고 함께 있어 주는 친구들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보편적인 슬픔을 절..
그림 앞에서 울어본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스피노자는 로빈이 한 것과 같은 반이성적인 진술들에 관한 훌륭한 이론을 갖고 있었다. 요컨대 우리의 정신은 흔히 신체에 생긴 일들에 놀라고, 그것을 설명하고 정리하기 위해 이야기를 꾸며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특정한 경험의 징후로 여기는 경향이 있따. 설명될 수 있어야만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눈물이 먼저 나오고 합리화가 그 뒤에 일어나는 것이라면 어떨까? 순전한 미스터리인 눈물이 먼저 오고, 정신이 그 뒤를 허겁지겁 좇아가며 투명한 드레스나 팔이 없는 동상 같은 온갖 이야기를 꾸며내는 거라면? 스피노자는 우리의 정신이 이런 사소한 거짓말을 꾸며내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몸과 생활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녀는 엄마도 아빠도 없었따. 가장 재미있는 순간에 자야한다고 말하거나 캐러멜 캔디를 먹고 싶은데 간유구를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좋았다. - 중에서 믿기 어렵겠지만 혼자 사는 여성의 첫 번째 모델 중 하나는 삐삐다. 삐삐 롱스타킹이 등장한 것은 스웨덴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이 출판된 1950년이었다. 당시 삐삐는 아홉살이었고 혼자 사는 아이였다. 삐삐는 말과 미스터 넬슨이라는 원숭이와 함께 살았고, 가방은 금으로 가득 차 있어 필요할 때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었다. 삐삐는 어른의 규칙이나 법, 관습에 규제받지 않고 상상력이 이끄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삐삐는 고아였다. 그것은 어린시절이 알 수 없고 해독 불가능한 시기라는 문학적인 착상이다. ..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자신 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상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은 유혹에 필수적인 무관심에 방해가 된다. 또 상대에게 느끼는 매력은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함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아는 누구와 같이 있든 안정된 동일성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클로이의 욕망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 나 자신을 바꾸려는 진정성이 결여된 시도를 되풀이했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하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고,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하면 구제불능일 정도로 따분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이 분명해지기 ..
.. 와, 암만 봐도 신기한 일이다. 지난해 항암 치료 받을 때 머리가 빠져 돈짝만큼 휑하니 비어 있더니 치료가 끝나자마자 포실포실 아기 새 솜털처럼 머리칼이 나서, 지금은 언제 빠졌었느냐는 듯, 전혀 표시 안나게 머리털로 덮여 있는 것이다. 뿐인가, 항암제 부작용으로 입 가장자리에 심한 염증이 생겼던 것도 꺠끗이 아물고, 방사선 치료 떄문에 꺼멓게 탔던 목살도 한 차례 검은색 비늘을 벗더니 이제는 아주 하얗고 부드러운 새살이 되었다 새로난 머리털과 보드라운 내 목살을 만져 보고 나는 새삼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따. 있어야 할 데 머리털이 없는 것은 얼마나 사람을 주눅들게 하던가, 입가의 염증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하지만 인체는 너무나 신비해서 그 위대한 복원력으로 다시 머리털이 나게 하고 상처를 아물..
왜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 의미 없는 것들을 판매할 때 가장 큰 돈이 생기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일까? 산업 혁명의 핵심에 자리 잡았던, 능률과 생산성의 극적 향상이 왜 샴푸나 콘돔,오븐용 장갑이나 여성 속옷처럼 평범한 물질적 상품을 공급하는 일을 넘어 확대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일까? 나는 르네에게 우리의 로봇이나 엔진은 그것들이 줄 수 있는 혜택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우리 욕구의 피라미드 가운데 가 장 낮은 것에만 가져다준다는 이야기, 우리가 과자를 빠르게 만드는 데는 분명히 전문가이지만 아직도 감정적 안정이나 결혼의 조화를 이루어줄 믿음직한 수단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는 얘길 했다. ... 모든 낭비 가운데 당신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낭비는 노동의 낭비다. 아침에 낙농장에 들어선 순간 막내아..
여름에 읽은 책인데 지금에야 생각나서 포스팅;;-ㅁ- 보통 여행기를 보면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을 해놓거나 감상만을 늘어놔서 실제로 그 장소를 가보면 적잖이 실망하거나 배신감마저 느끼는 경우가 많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은 환상과 이미지일뿐 실체와 다르기 때문에 안내책자만 보고 갔다가는 실망할 수 밖에 없다고 한 이유가 바로 저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의 이 책은 말그대로 발칙하다 :) 독설이 있기도 하고 조금은 썰렁한 유머가 있기도 하고 작가의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들도 자유롭게 녹아있다. 요즘 화려하고 사색적인 문장에 좀 질려가서 좀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하는 책들을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그 중심에 놓여있;;-_- 가끔 너무 솔직하게 써놔서 당황스럽기까지 한데.. 예를 들면 이런식 ..
이 책은 '배신'을 주제로 한 인터뷰 특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김용철,정혜신,진중권,정재승,정태인,조국 이 다섯명을 강사로 초빙해서 강연과 인터뷰를 병행하여 진행되고 있다. 강사들의 구성도 마음에 들고 특강 내용이 흥미롭고 풍부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배신에 대한 여러가지 논의 중에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씨의 부분이 기억에 남아서 가져와봤다. 개인적인 차원의 배신에서 사회적인 이슈까지 확장되고 있었지만 개인적인 이야기 부분만 실었다. 시간을 두고 알아갈수록 실망스러운 사람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가 어쩌면 그 사람은 그대로 있었을 뿐인데 내가 보고싶은 부분만 보고 있다가 뒤늦게 원래 모습을 발견하고 배신감을 느낀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분석에 '베이식 트러스트'라는 용어가 있어..
요리사는 자신을 긴장시키는 손님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스테이크를 시키면서 웰던으로 구워달라고 요구하는 손님은 무시하게 된다. 닭요이를 시키는 손님도 그렇다. 뭘 먹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이탈리안 식당에 와서 시키는 게 닭요리다. 웰던 스테이크는 고기맛을 모르는 사람이 먹는다. 미식가들은 메뉴에 없는 요리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오리 한 마리를 구워도 선택적으로 먹고 닭도 살이 오른 어린 닭이나 거세된 수탉만 먹는다. 가능하다면 18세기처럼 식탁에 백조요리라도 올려놓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미각이 먼저 입술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촉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음식이 입에 닿는 그 첫 느낌, 그 즐거움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두루미의 입보다 더 긴 입을 갖고 싶어하며 음식이 위장으로 내려가는 동..
전경린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건데, 인물들의 직업이나 학력,배경에 상관없이 비슷한 수준의 생에 대한 고민과 이를 풀어놓는 화법의 깊이가 너무나 비슷비슷해서 약간 거부감이 일어난다.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 한다면 적당할 듯. 그래서 현실이 아닌 소설이겠지만, 만약 우리 모두가 그의 소설처럼 실존에 대한 고민을 강하게 하고 규격화된 제도를 단지 그릇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아마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을듯,, 사람들은 보통 세 번씩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고 한다. 지구는 돌고 있고 생도 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원심력 바깥으로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다. 다만 실패를 반복하며 그 자리에서 심화되어 가는 것이다. 세 번씩 같은 짓을 저지른 사람 중에는 더 이상의 시도를 그만두는 사람과 세기를 그만 두는 사람 ..
태인은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좀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싱싱한 생선이나 감자나 양파, 혹은 흙 묻은 시금치나 상추 같은 것들 만지기를 좋아했다. 태인은 그것을 생과의 접촉이라고 말했다. 껍질 깐 감자나 양파의 신선한 생명력을 손끝에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은 가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양말과 옷가지는 반드시 스스로 세탁해서 말려 입으려고 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혼자 생활해온 습관이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인간의 품성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 그런 생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고수할 생각이었다. 요즈음 계속 전경린 소설들만 읽고 있다. 씁쓸하면서 끈적한 그런 눈물의 짭짜롬한 맛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은 후에 한동안 내 주위를 맴돈다. 전경린의 작품 속에는 8..
영화 '밀애'를 보면서 항상 아쉬움을 느끼지만 , 기본적으로 그 영화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아쉬움이었기에 그것을 조금 달래고자 원작을 한번 읽어보았다. 아마 내가 갖는 아쉬움은, 내가 작가와는 달리 야생적이지 않고 제도 안의 것이며 세상이 쳐놓은 휘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랑은 좀 불편해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미흔이 사랑을 하는 장면들 보다는, 미흔의 남편 효경의 외도 상대가 크리스마스날 집으로 문득 찾아와 일상의 행복이 와장창 깨지는 장면이 더 기억에 남았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지겨울정도로 통속적인 장면일수도 있는데... 무섭도록 소름이 돋았다. 비가 등에 내리꽂히듯 내리는 날 읽다보니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이 슬퍼졌다. 엄마의 집이 이 작품의 후속편쯤 된..
"내 그림은, 잠 속을 휘감는 욕망의 넝쿨이고 동시에 넝쿨을 자르고 길을 내는 칼날이었어.내가 나에게 도달했을 때, 난 꿈에서 께어났지." ,,,,(중략) "내 그림 때문에 너도, 아빠도 힘들었다는 거 알아.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림 같은게 있다고 생각해. 네 아빠에게도, 스무 살 시절에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했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네 아빤 즉각적으로 화를 냈어. 5.18도, 군사정권도, 국가보안법도,다국적 기업 노동자의 현실도. 이 살벌한 현실도 피할 수 없으니 즐기자고? 나도 아빠와 한판이었어. 인간인 이상. 피할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는게 있어.그래서 싸우는거지. 난 모두에게 저마다의 잠과 저마다의 싸움이 있다고 생각해. 그 잠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을 즐기면, 영영 꿈에서 깨어날 수 없어..
나무 인간은 눈보라 속에 서 있는 나무 줄기하고 다를 게 없다. 나무는 미끄러운 눈을 밟고 서 있다. 슬쩍 밀면 간단히 밀려날 것 같다. 물론 그렇지는 않다. 뿌리를 굳게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독신자. 나이 들어서 독신으로 산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어쩌다 하룻밤 같이 보내고 싶어지면 품위 있게 애원해야 한다. 몸이 아플 때도 텅 빈방안에서 몇 주일이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다. 언제나 문 앞에서 헤어져야 할 뿐 아내와 나란히 계단을 오르는 일도 없다. 방안에 들어와 봤자 옆집으로 통하는 쪽문만 보일 뿐이고, 날마다 저녁거리를 사들고 돌아와야 한다. 남의 집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에 경탄하며 "나는 하나도 없다"고 중얼거릴 수도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젊은 시..
남자들과 여자들은 이른바 성행위라고 하는 것 속에 파묻혀서 짧은 시간 동안에 서로를 탕진해 버리거나 아니면 둘이서의 기나긴 습관 속에 얽매이는 것이다. 그 두가지 극단 사이에서 중간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도 역시 독특한 것은 못 된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랑에서도 시간이 없고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꺠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민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네들 생각만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휴머니스트들이다. 사람은 제각가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세상에서..
폭력이다, 비폭력이다 그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시위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 때문에 폭력이란 것이 과연 옳은 대안인지, 어느 행동부터 폭력이라 명명할 수 있는지 논란이 되고 있고 있다. 마침 이 책을 발견하고 읽는 중. 예상외로 재밌고 흥미도 있다. 그런데, 우리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억압의 토대가 되는 규칙을 만들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게임에 가까이 가지 말라. 그들의 규칙으로 게임을 하지 말라! 이것은 새로운 게임이며 우리가 새로운 게임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규칙은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무엇인가가 변하고 있음을. -맬컴 엑스 폭력의 철학이라는 제목을 내걸며 이런 말로 시작해도 될까 싶지만 폭력과 비폭력을 기준으로 세상을 나누는 것이 어떤 의미에..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프랑스 작가길래 피에르 쌍소처럼 지식인의 사색적인 내용을 담고있는 작품이려니 하고 읽어내려 갔는데 예상에서 완전히 빗나간 ^^: 프랑스판 시드니 셀던에 더 가깝다고 해야할 듯하다. 알고보니 기욤뮈소의 처녀작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뭔가 깊이있는 완숙미는 부족하지만 여기저기 세심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책 설명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노골적이진 않지만, 여기저기 삽입된 성적코드나 정치적 인사의 개입, 언론 등의 소스를 끌어들인 추리소설정도라고 해야할까. 술술 읽혀내려갈만큼 전개는 속도감 있고 또 적당히 재미있어서 단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누구나 행복한 가정이라든가, 행복한 결혼생활이라든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원형적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물론 바라는 것이 다 이루어질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무참히 깨져버릴 거라고 단정하는 것보다는 혹시나...하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행복한 삶의 이미지는 MARTHA STEWART LIVING이나 Vogueliving, Country Home에 나올법한 가정의 모습이다 바로 위의 저런 가정의 모습. 항상 생화가 꽂혀 있고, 밖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단정하게 세팅된 식기와 인테리어들. 어렷을 때부터 더럽거나 어질러진 상태를 싫어하는 편이고 엄마와 같이 인테리어 잡지를 보거나 가구나 식기를 함께 고르려 다녀서 관심이 많다보니 저런 원형을 가지..
어떤 내용인지 미리 찾아보지 않고 봤기 때문에 처음 생각했던 내용과 다르게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이 있었다. 죽음의 신이 한 소녀의 성장을 지켜보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독특하다고 해야할까.. 책에 얽힌 소녀의 성장과정을 따뜻하고 소소하게 풀어나가서 참 좋았다. 이야기의 흐름만 본다면 아기자기하고 귀엽지만 소재 자체가 히틀러 집권 당시 독일이다보니 음울하고 슬픈 기운이 배어나오고 있다. 특히 어둡고 컴컴한 지하실에 온 마을사람들이 앉아 폭격의 두려움에 시달릴 때 소녀가 읽어내려가는 책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공포를 잊으려는 광경은 뭔가 뭉클했다. 생각해보니 내 유년 시절도 책과 참 관련을 많이 맺고 있다. 처음 밤을 새본것도 유치원 다닐 때 어머니 친구분께 선물받은 올컷의 작은 아씨들을 시간..
인간없는 세상 연대기 2일 후 : 뉴욕의 지하철역과 통로에 물이 들어차 통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7일 후 : 원자로 노심에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디젤 발전기의 비상연료 공급이 소모된다. 1년 후 : 무전 송수신탑의 경고등이 꺼지고 고압전선에 전류가 차단된다. 이렇게 되면 무엇보다도 고압전선에 부딪혀 매년 10억 마리씩 희생되던 새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나게 된다. 3년 후 : 난방이 중단됨에 따라 몇 해의 겨울을 거치며 갖가지 배관들이 얼어터진다. 내부가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건물이손상된다. 예컨대 벽과 지붕 사이의 이음매에 균열이 생긴다. 도시의 따뜻한 환경에 살던 바퀴벌레들은 겨울을 한두 번 거치는 동안 멸종된다. 10년 후 : 지붕에 가로세로 18인치의 구멍이 나 있던 헛간이 허물어진다. ..
911 미국 테러사건 직후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실한 상황에서 한 아프가니스탄인이 인터넷에 공개서한을 올렸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이 이미 충분히 황폐해져 있으며 복수가 아니라 먹을 것이 필요하고, 증오가 아니라 동정이 필요한 나라라는 사실을 미국인들이 알아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설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아픈 역사를 소설이라는 매개를 통해 보여주면서 아프가니스탄에 더이상의 상처를 가하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한권의 탄원서처럼 보인다. -역자의 말 中 참 오랫만에 좋은 소설을 만났다. 읽으면서 마음이 아리고 따스해지는 감정을 별기대 없이 읽어내려간 소설에서 만났다. 카불의 책장수도 참 좋았고 요즘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작품 중에서 수작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