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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날씨는 맑음
가정이란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니다. 우리를 이해해 주는 곳이다 -크리스티앙 모르겐스턴 걸어도 걸어도의 첫 장면은, 어머니와 딸의 요리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다소 색감이 빠진듯한 화면에서 소박하고 평범한 여름의 일상이 그려지고 있다. 오늘은 10년전 물에 빠진 한 아이를 구하고 사망한 이 집의 장남 준페이의 제사를 위해 온 식구가 모이는 날로 이 영화는 이 가족의 1박2일의 일상을 집안 이곳저곳을 누비며 그대로 보여준다. 제사날이긴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라 그런지 슬픈 기색보다는 오랜만에 모이는 식구들을 위해 요리하는 모습들이 더 부각되어 일상적이고 소박한 행복이 스며나오는듯한 느낌을 준다. 나무도마에 칼이 리드미컬하게 부딪히는 정겨운 소리. 썰어지는 무와 당근들. 식구들이 합심해 옥수수 ..
우디 앨런의 신작! 미드 나잇 인 파리. 지난번엔 바르셀로나 이번엔 파리. 그리고 아직 개봉전인 작품은 로마인 것 같다. 전작에서 바르셀로나를 생기발랄하고 매력적으로 그린터라, 이번에도 어떻게 파리를 묘사했을까 궁금했는데 역시 >__< 너무 멋져서 프로필을 찾아보니 대머리(...)라 좀 충격 받음;; ㅠ 젤다 제럴드 역을 맡은 배우는, 식스핏언더 이후로 참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 등장인물들이 꽤 여러 명이라 이들의 캐릭터를 잡고 대화를 재구성해내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http://baseballpark.co.kr/bbs/board.php?bo_table=bullpen3&wr_id=100315) 그냥 스쳐가는 예술가들 하나하나가 참 보석같다 :) 게다가 피카소의 연인 아드리아나가 동경하던 황금시..
이 작품은 도그빌(2003)-만덜레이(2005)-워싱턴(2007)으로 이어지는 라스 폰 트리에의 '미국:기회의 땅' 3부작 중 첫 작품이다. 사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대학교 초반에 봤던 작품인데 당시에 3시간에 가까운 영상에 계속 집중하고 있기엔 너무 피곤했던 상태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 계속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꽤 긴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마주한 이 영화는 역시 훌륭하다. 이 영화는 자막과 서술자의 내레이션을 통해 극의 구성, 마을의 상황, 각 장의 소제목을 표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흡사 희곡의 해설을 그대로 읽어주는 느낌인데 2장 9막으로 이루어진 연극을 영상에 옮겨놓은 것 같은 이 장치들은 극도로 인공적이고 통제된 공간에서 배우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로키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도그빌'이..
요즘 열대야 때문에 중간에 잠을 깼다가, 에어컨을 틀어놓고 책 한권이나 영화 한편을 보고 다시 자는 날이 며칠 째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그간 보지 않고 방치 중이던 dvd나 책들을 매일 한작품씩 줄여나가고 있어서 일정 부분은 긍정적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들을 좋아하는지라,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바로 아 유태인 이야기구나 싶었다. 파자마라는 단어는 마땅히 폭신한 침대와 보드라운 이불, 꿈결 같은 시간을 암시해야하지만 줄무늬와 함께 결합했을 때 이 단어는 유태인 학살과 수용소라는 전혀 다른 함의를 갖게 된다. 존 보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여타의 유태인을 다룬 영화와는 달리 비참한 수용소의 생활이나 이들이 잔인하게 핍박받는 장면은 거..
이 영화는 박찬옥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홍보와 실제 작품간의 간극이 너무나도 크게 벌어져 있다. 형부와 처제간의 넘을 수 없는 아슬아슬한 사랑이야기처럼 포장해놨지만 실제로 이 작품은 욕망과 상처가 노출된, 생채기투성이의 날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안개와 먼지, 깨짐과 상처가 뒤범벅되어 있는 이 영화는 파괴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기 보다는 파괴된 사람들의 관계를 이야기 하고 있다. 고혹적인 와인 컬러가 아닌 무채색이 주를 이루는 영화다. 도발적으로 올려다보는 서우와 눈길과 멘트와는 달리 이 작품에서 서우는 팜므파탈적이지도 않으며, 이선균 역시 처제를 노골적으로 탐하기엔 너무나 상처 깊은 영혼이다. 때문에 은밀한 사랑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크게 분노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 볼..
클로드 샤브롤의 '의식'은 1933년 2월 프랑스에서 발생한 파팽 자매의 살인사건과 매우 유사하다. 때문에 같은 사건의 영향을 받은 장 주네의 '하녀들'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감독 스스로 '최후의 마르크스주의 영화'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계급갈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파팽 자매의 살인사건은 하녀였던 크리스틴/레아 파팽 자매가 주인 모녀의 눈알을 뽑은 뒤 살해한 사건인데, 이 사건이 흥미롭고 극적인 이유는 경찰이 살인 동기를 묻자 크리스틴이 '나는 여주인들의 피부를 갖고 싶었어요. 대신 그들이 우리의 피부를 갖고요' 라고 말한 부분 때문이다. 문맹자의 수치심과 두려움과 탐독가의 오덕스러움을 강하게 드러냈던 원작 소설 '활자잔혹극'과는 달리, (배경을 70년대에서 90년대로 끌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이중성이란 뜻의 퍼펙트 블루. 97년에 만들어진 콘 사토시의 작품인데, 아이돌에서 배우로 전향하면서 겪게 되는 일본의 연예계의 모습이 한국의 그것과 너무 흡사해 지금 봐도 별다른 위화감이 들지 않을 정도. 정말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작품의 짜임새가 몇번을 다시 봐도 놀라울 정도고, 애니메이션만이 구현해 낼 수 있는 특징들을 잘 활용해서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더해진다 . 몇년 전에 처음 봤을 때도 애니메이션치고 꽤 독특한 소재라, 이 시기에 만든 것들은 참 하나같이 수작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만 예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뭔가 석연치않은 점이 있어서 평들을 쭉 보았다. (결말을 본 사람이면 찜찜함을 안 느낄 수가 없지;;) 그 평들 중 이런 점을 해결해주는 해설을 발견해서 덧붙여본..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하는 몇가지 행동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요리이다. 평소에 하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장인이 작품을 만드는 느낌으로 온갖 공을 들여 멋지게 완성하고 나면 그 뿌듯함에 어쩐지 마음의 짐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 때의 요리는 어떤 꼼수나 기구도 사용하지 않고 정석대로 차근차근 아주 성실하고 정직하게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가장 큰 기쁨은 이렇게 만든 요리를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다. 때문에 난 혼자 우아하게 먹는 화려한 식탁도 사랑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소박하게 차린 밥상 역시 매우 아낀다. 아픈 연인을 위해 차려낸 죽 한사발을 누가 초라하다 할 것이며, 생일을 맞은 엄마를 위해 처음으로 만든 어설픈 미역국을 누가 욕할 수 있을까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손꼽..
뮤지컬 중 가장 화려한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오페라의 유령. 영화로 나온 작품도 좋아하지만, 역시 뮤지컬은 현장에 가서 봐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제는 워낙 많이 봐서 가사며 음악을 나오기도 전에 미리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리지 않고 꾸준히 찾게 되는 작품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샤롯데에서 공연할 때도 배우를 바꿔가면서 몇 차례 보았지만, 로얄 알버트 홀에서 진행된 25주년 기념 공연의 장엄함에는 따라갈 수가 없다. 워낙 화려하고 커다란 홀인데다가, 전석매진되었던 기념공연인만큼 여기저기 공을 들인 표시가 역력한 무대. 작년에 전세계에 생중계 되었던 이 런던 공연을 2만원 정도에 3D 상영해준적이 있었는데, 그때 워낙 좋았던 공연이라 두고두고 볼 생각으로 구매했..
원작소설 '은교'를 처음 읽었을 때 그리 큰 감흥이 없었기 때문에 보지 않으려 했던 영화. 하지만 박범신 작가의 책들은 항상 영상화 되었을 때 더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에, 결국 호기심에 보게 되었다. 원작소설이 거슬렸던 가장 큰 이유는 은교의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어색한 어휘나 말투 때문이었는데, 영화에서는 김고은의 말투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훨씬 거북하지 않았다. 박해일의 노인말투가 어색하다고는 하지만 영화 보는걸 중단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럭저럭 괜찮았던.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품 역시 영화가 소설보다 훨씬 더 좋았다. ㅠㅠ (박범신 작가는 대중소설, 베스트셀러로 이름이 높았던 작가인데, 대중소설에 대한 평단의 혹독한 시선 때문에 꽤 상처를 많이 받으셨던 것 같다. 소설에서 강하게 드러났던 이런 모습들이..
오랜만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오프닝과 엔딩 때 흑백바탕에 어우러지는 원색을 띤 글씨의 조화가 멋드러졌다. 개인적으로 이 감독의 영화는 혼자 보는 것보다 친구들과 주인공에 대한 담화를 나누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말 보면서 어쩜 저런 찌질이가 다 있지. 하면서 짜증나게 하는 묘한 공감대 형성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여전히 사실적이지만 극도로 찌질한 남자들과 지식인이지만 어딘가 부족하고 현실성이 떨어져보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대화는 정말 우리의 일상처럼 그리 단정하고 질서정연하지도 않고 극적이거나 기승전결이 완벽하지도 않다. 어딘지 비논리적이고 불안한 균열이 엿보이는 일상과 대화. 마무리 되지 않은 사건들과 관계로 넘쳐난다. 이들 모두 나름대로 한 분야의 지식인들답게 말은 잘하고 그럴듯한..
이 작품은 마일스와 친구 폴의 와인을 테마로 한 일주일 간의 여행으로 시작되지만 이를 기반으로 한 로드무비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제목 그대로 샛길로 슬슬 빠지더니, 어느덧 마일스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삶이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행을 통해 뭔가를 배우거나 크게 내적성장을 거치지 않고, 말 그대로 그저 여행을 할 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행은 뒷전이고, 이 두 인물은 다른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있다. 마일스를 설명하자면 마흔이 넘은 이혼남에, 영어교사일을 지겨워 하며 작가를 꿈꾸지만 아직까지 등단도 못한 상태. 결국 작품 말미에 가면 모든 출판사에서 너무 작품이 난해하다며 출판을 거부하는 바람에, 에이전시에서도 그를 포기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부인의 잔소리가 지겨워 바람을..
운동도 잘하고 타고난 이야기꾼에 머리까지 좋아, 친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스탠리. 하지만 매번 집에서 밥을 먹는다며 도시락을 싸온적이 없다. 하지만 착한 친구들이 자신들의 도시락을 항상 나눠줘서 굶지않게 되는데, 먹보에 욕심쟁이 선생님 한명 때문에 스탠리의 몫을 모두 빼앗기게 된다. 이에 화가 난 아이들이 먹보교사를 피해 점심시간마다 숨어서 식사하는 과정과, 이를 찾아다니는 교사의 숨바꼭질이 이야기의 중심부를 이룬다. 아동의 노동력착취나 가난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코메디로 분류되어 있듯이 전체적으로 밝고 유쾌한 분위기. 요즘은 상상하는 것조차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천진한 아이들의, 더없이 착한 영화이다. 최신 핸드폰과 4단도시락 / 온갖 피멍과 물배채우기로 보여지는 빈부격..
'돼지의 왕'은 영화 '파수꾼'처럼 교실 내 권력구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애니메이션 고유의 표현력으로 매우 강한 흡입력을 내뿜는 작품이다. 성인 애니메이션답게 학교현실을 냉혹하게 비틀고 재배치시켜서, 돈과 힘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구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국내 독립 애니메이션, 게다가 연상호 감독의 첫장편데뷔작인데도, 과감한 전개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결국 칸 초청받은 ㅎ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라 정작 영화의 주된 인물로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이 작품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영화 개봉시기를 놓쳐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상영을 할 때 보고왔었는데 오프닝과 엔딩이 한동안 잔영으로 남을만큼 강렬한 작품이었다. '돼지의 왕'의 오프닝은 애니메이션이라기 보다는 범죄영화에 더 가까워 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큐브릭의 영화 중 가장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꽤 직설적인 비틀기를 사용한데다가 정극연기라 더 웃긴 대사들 때문에, 오래된 영화지만 지루한 느낌 없이 재밌게 봤다. 정신나간 리퍼 장군에 의해 잘못 내려진 소련 핵폭탄 투하 명령, 전쟁상황실에서의 긴박한 대화, 미소간의 첨예한 갈등이 주된 내용인데도 분위기는 깨알 같은 언어유희와 풍자가 난무한다. 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상호확증파괴 전략이다. 상호확증파괴는 적의 핵공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종말병기가 작동되는게 하면, 파멸을 막기 위해 서로가 전쟁을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핵의 전쟁억지력을 주장하는 전략인데 실제로 미소냉전시대에 채택된 바가 있다. 이 작품은 (종말병기의 오작동이나 어떤 정신병자에 의한 종말병기 작..
센스 있는 포스터. 지금 나오는 어지간한 것들 보다 깔끔하고 임팩트 있다! ^^ 이 작품은 시계태엽오렌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더불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미래3부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감독 특유의 완벽주의 때문에 예상보다 두배 이상 길어진 제작기간과 제작비 그리고 감탄할만큼 세세한 디테일을 자랑한다. 실제로 외계인이 나타나면 리얼리티가 깨져 망할까봐-_-; 추가로 플롯을 구성하고 보험까지 들려고 했던 큐브릭 감독의 집착은 워낙 유명해서, 배우들이나 스탭들이 엄청 힘들었을게 눈에 선하다. '미래형 화장실의 수칙 10계조' 같은 쓸데 없는 고퀄이라든가, 무중력상태의 우주선을 거의 완벽하리만큼 구연한 것 등은 감탄을 자아내는 >_< (제임스 카메론이 왜 이게 잘못됐는지 화내면서 재촬영을 하는 스타일이..
오랜만에 무슨 영화를 볼까 하다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를 봤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미 화제가 됐었고, 독특한 오프닝에 대한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꼭 보고 싶었던 영화. 이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트리 오브 라이프'와 여러모로 비교가 되는데 특히 두 작품 모두 잘 짜여진 이미지의 향연을 보여준다. '트리 오브 라이프'가 생명체의 탄생에 대한 웅장한 영상을 보여준다면, '멜랑콜리아'는 종말에 대한 은유로 넘쳐난다. 또한 말러, 브람스, 스메타나, 바흐 등의 클래식 음악을 영리하게 사용했던 '트리 오브 라이프'처럼 멜랑콜리아도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작품 전체를 압도한다.'트리스탄코드'라고 불리는 바그너의 G# 주도의 반음계적 화성진행으로 ..
토르, 헐크,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닉 퓨리, 호크 아이,블랙 위도우,로키 마블스의 각종 영웅들 총 집합. 그래픽 노블에서 보던 인물들이 다들 능력과 행동반경이 달라서 전체적인 조망이 확대와 축소를 반복해서 역동적이고 활기가 넘치는 영화. 개인적으로는 다른 잡다한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폭발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헐크가 가장 맘에 들었다 ㅎ 톡톡 튀는 대사에 깨알 같은 재미. 아이맥스 3D로 보면 더 좋았을 것 같다 ^^
세상에서 나 혼자만 거짓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똑같지만,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라는 재밌는 상상력을 전제로 만들어진 영화. 소재의 특이성을 생각하면 그리 잘 빠진 영화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영국식 코메디와 기발한 발상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다. 비만에 실직, 못생긴 외모로 우울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거짓말을 발명하게 되고 부와 명예를 모두 얻게 된다. 얼떨결에 천국과 신의 존재까지 창조해내 버린 주인공. 그런데 이게 현실을 꼬집는 내용들이 묘하게 엿보여서 흥미롭다. 니체는 영원회귀를 통해 오늘의 삶이 내일도 반복되니 오늘을 최대한 행복하고 가치 있게 살기를 권고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적인 삶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하게 만든..
디센던트는 표면적으로는 이별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좀더 세부적으로는 익숙한 것들의 타자화를 경험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어바웃 슈미트'와 '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이 감독을 맡고 조지 클루니가 개런티를 낮춰가며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인디에어에서 조지 클루니의 연기가 매우 좋았기 떄문에, 이 영화도 평이 좋아서 꼭 봐야지 싶어 개봉하자마자 찾아가서 봤었다.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맷 킹은 부동산 전문 변호사이자 아름다운 하와이의 왕족과 부유한 은행가의 후손이다. 꽤 많은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음에도 본인의 힘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중년남. 그리고 두 딸을 둔 평범한 가장. 겉으로 보이는 스펙은 꽤 탄탄하지만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삶은 지루하고 여기저기 구멍..
인간은 그 자신에 대해 정직해 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얘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하지 않고는 못배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인간, 즉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죄악이다. - 구로자와 아키라. 몇년 전 신정아의 학력위조 사기극을 계기로 허언증이라는 증상이 떠들썩하게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자신은 죄가 없다고 끝까지 믿었던 것처럼 우리 대부분은 의도적으로 악행을 범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악행이나 의도적인 잘못은 언제나 이루어지고 우리는 스스로의 꺼림직함을 속이기 위해 혹은 나 자신을 위한 대의를 완성하기 위해 기억을 왜곡하고 이를 그대로 믿어버린다. 이 영화는 아쿠다카와..
일루셔니스트는 뱅상 쇼메의 대표작 중 하나로, 특유의 독특한 색감과 캐릭터 묘사가 인상적인 애니메이션이다. 프랑스 코메디거장 '자크 타티'의 동화같은 삶을 고스란히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하고자 노력한 결과, 작화 하나하나에 살아숨쉬는듯한 생동감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자크 타티를 부활시켰음을 느낄 수 있다. 영국의 시내 곳곳과 스코틀랜드를 묘사해 놓은 장면들이 매우 사실적이고 아름다운데 마치 화면을 통해 마술사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마술사이다. 하지만 인기 있고 멋진 마술사가 아니라, 이제는 록스타나 영화에 밀려 뒷골목으로 밀려나게된 힘없는 초로의 사내이다. 영국 중심가에서는 더이상 서기 힘들어진 마술사 타티셰프가 스코틀랜드 작은 섬의 선술집 공연..
리턴 투 햄릿은 연극열전 작품 중 하나로 영화감독 장진의 연출로 제작되었습니다. 웃음의 대학 이후에 정말 오랜만에 보는 연극열전 작품이네요. 작년부터 140회넘게 공연한 연극이지만, 참여하는 배우들이 거의 처음 보는 신인이거나 무명배우들이었고 (제가 본 회차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진에서 마이크 잡고 계신 양진석 씨의 첫공이기도 합니다) 장진감독이 연출한 연극이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오히려 억지웃음만 유발하고 무게감은 없는 연극이 아닐까해서 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8일이 마지막 공연이라 할인행사를 했고, 장진의 감독은 영화들은 참 좋아하기 때문에 급히 예매를 했습니다. 마지막 공연..마지막 수업은 언제나 참 특별합니다.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만큼 곱게 완성도 있게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올해 들어 봤던 영화 중 가장 강렬한 작품. 포스터의 문구 그대로,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독재사회를 담아내고 있다. 꽤 인위적으로 조작된 가족의 모습 때문에, 연극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프랑스 영화 답게 철학적인 요소를 (다소 거칠게) 녹여내고 있는데, 대놓고 독재를 비판하고 있어서 이해엔 크게 어려움이 없다. 꼭 독재사회를 다룬 정치적인 영화로 한정짓지 않는다면, 정부나 사회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볼 수도 있고 부모의 억압적인 양육태도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워낙 직설적인 은유가 강하고 충격적인 장면들이 계속 되다보니, 오히려 강한 결말의 임팩트가 다소 약하게 다가왔다. 희극적인 장면에 웃을 수가 없었던 영화. 분명히 좋은 영화인데..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를 잘 살린 영화. 한바탕 놀아보자는 느낌의, 휘몰아치는 느낌의 영화. 스토리 자체의 개연성은 떨어지기 때문에 긴장감 넘치고 이리저리 추리하는 범죄물을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코메디물로서의 기능은 충실한.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 보면 적당하다. 유다인 혜화동에서 보고 참 인상 깊었는데, 이 영화에서 다시 보게 되서 반가웠다. :)
아 이제훈이 정말 빛이 나는 영화다. 수지나 한가인의 연기는 보이지도 않고, 엄태웅보다 이제훈의 몸짓이나 표정만 섬세하게 들어오는 작품. 한국 로맨스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오랜만에 연애시대를 보면서 느꼈던 기분을 맛보게 해주었다. 7,80년에 머물러 있던 향수나 그리움의 원천을 90년대로 끌어올렸는데, 전람회의 음악과 함께 그 시대를 아주 아름답게 표현해냈다. 마음이 따뜻해지기도..아파오기도 했는데 꼭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DVD 나오면 꼭 사야지 :) 음악들도 다들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들이라 참 좋았다. 지금 전람회와 김동률의 음반들이 이 영화덕분에 인기차트에 올라가 있다던데 기분이 좋다 ^^ 1. 처음 사귄 남자친구가, 내가 지나가는 말로 천장으로 별이나 빗방울이 보이는 집을 갖고..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예상 외로 정말 마음에 드는 영화였다. 안봤으면 후회했을텐데, 오늘 봐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헐리우드에서 만든 그렇고 그런 미담일거라 예상했었는데, 영화 시작과 함께 흘러나오는 불어에 깜짝 놀란 ^^: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말하자면, 문구와는 달리 자본으로 인한 계급갈등이나 빈부격차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만남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멋대로 부르는 것과 같은 값싼 동정을 보여주거나, 나와는 다른 혹은 내가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 규정짓지 않았다. 내가 봤던 것 중 가장 짜증났던 영화 중 하나가 인도판 헬렌 켈러를 그린 'Black'이다. 내가 이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장애인을 온갖 민폐덩어리에 무슨 ..
이 작품은 성석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극단 하땅세의 작품 원작이 이미지 중심의 단편소설이라 어떻게 연극으로 풀어놨을지 매우 궁금했었는데 마침 티몬에서 할인 행사를 해서 보고 왔다. 공연시간은 1시간으로 꽤 짧은 편. 마치 향수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매력남 남가이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연극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바그너의 '발퀴레'나 스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곡조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점이 독특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연출이 몇가지 있어서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지만,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며 주제의식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매우 아쉽다. 소설이 가지고 있던 풍자성을 거의 살리지 못한 듯.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매우 좋아하는 작품. 1989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작이다. 감독은 독일의 Christoph Lauenstein과 Wolfgang Lauenstein 형제. 스톱모션 기법을 잘 활용하였다. 아주 오래 전의 애니메이션이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수작으로, 마지막 결말까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꽤 무거운 주제를 단순화시킨 작은 판 위에서 묵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본주의 그리고 기득권들로 인해 엉망이 되어 가는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때때로 이 작품이 떠오르게 된다. 뮤직박스의 등장으로 인간의 탐욕과 권력욕이 작동하면서 잘 잡혀있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모두 권력을 잡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지만, 모두가 가질 수는 없다. 그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느..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얼마나 위태롭고 깨지기 쉬운 것인가. 화차에 대한 자세한 평은 이미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을 다루면서 썼으니 패스. 영화와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선균의 역할을 더 주도적으로 부각시켰다는 것. 그리고 소설에서는 일부러 피한 것으로 보였던 강렬하고 자극적인 장면이 있다는 것이다. 김민희의 팬션 장면 중에서 뺨을 때리는 부분이, 사채업자들에게 뺨을 맞던 장면과 겹쳐서 참 마음이 아팠다. 나도 저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어서 더더욱.. (이선균은 어떤 역을 해도 이선균.아마 목소리 때문인듯 싶다. 자장가 불러주는데 커피프린스에서 노래 부르던게 생각나서 ;; =ㅁ= 발연기의 대명사였던 김민희의 연기는, 이전 몇편의 영화에서부터 좋아지더니 이제는 정말 자연스러움을..